언      제?   2008년 4월 19일 토요일

누  구 랑?   나혼저

어      딜?   각흘고개-광덕산갈림길-갈재-태화산천자봉-금계산갈림길-세동고개-법화산-신달리

도상거리?   15.03km(GPS,+약1km 문암서 각흘고개까지)

소요시간?   6시간 20분(+약30분 문암서 각흘고개까지)

비      용?   버스비 1100원(신달리서 문금리1구 문암마을까지)

차량 이동경로 : 회사-성환-천안-배방-송악-각흘고개-송악-배방-내집(73km)

 

이번주도 마음 편히 산을 찾을수 있을만큼 토,일요일 양일에 걸쳐 온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을 짜봐도 토요일 오후의 시간만 허락될 뿐이다.

하여 어디 가까운 곳중 의미있는 산행이 될만한 곳이 없을까를 고민하다 이 법화단맥을 떠올린다.

법화단맥은 신경수란 분이 체계화한 우리산줄기 수체계도에 금북정맥 곡두고개 근방에서 분기한걸로 기록하고 있다.

근데 문제는 목표는 정했으나 더이상의 자료가 없다는 거다.

아무리 뒤져봐도 법화단맥 이라는 이름하나 딸랑일뿐 선답자의 산행기 하나 , 개념도 하나 구할길이 없다.

하여 어쩔수 없다.

내가 개척해야지........

지도상의 등고선을 보고 어설프나마 마루금을 그어 본다.

서툰 솜씨지만 막상 그려놓고 보니 금북정맥 갈재고개 근방 646봉에서 남으로 뻗어 유구읍 비득재까지 이어져 유구천에 맥을 묻는 약20km 가량의 산줄기 하나가 나타난다.

아무래도 이 산줄기가 법화단맥 인거 같다.

암튼 가보자.

아니면 마는거지 뭐.

법화단맥.

오늘은 여건상 신달리까지 한구간으로 끊고 , 다음번에 신영리 동쪽을 거쳐 창말까지 이어갈 계획이다.

 

2주만에 다시 찾은 각흘고개.

고사리를 꺽으러 왔다는 두명의 산꾼이 저 해태상뒤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첫번째 헬기장을 향해 열심히 오른는데 남쪽으로 금계산이 조망된다.

날씨 참 좋다.

 

서쪽을 바라보니 �산과 걱정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저 두개의 산사이에 내가 나고자란 덕곡리 머그네미 마을이 있다.

언제고 저곳을 잊어본적이 없고 , 또 언젠가는 저곳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첫번째 헬기장.

 

나무사이로 광덕산이 보인다.

 

오늘도 여지없이 MTB를 즐기는 분들이 상당하다.

걷기도 힘든길을 저걸 끌고 댕기는게 얼마나 어려울꼬........

 

MTB로 인한 등로의 손상이 심각해 보인다.

 

여기 또 지나간다.

오늘 꼭 세팀을 본다.

 

올라야할 646봉.

 

646봉을 지나 가야할 마루금.

 

금계산은 또 약간 방향을 틀어 비스듬한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 산행은 저 금계산을 완전히 한바퀴 돈다.

 

갈재.

아마도 포장을 하려는거 같다.

내 개인적으론 그냥 냅두는게 좋은데........

 

태화산 천자봉.

이산은 꽤 높은산임에도 그동안 이름조차 얻지 못한것이 내내 안타까웠더만 누군가 태화산 천자봉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산이름이야 많은 사람들이 부르다보면 자연히 굳어지게 마련인데 근래엔 갈재산이라 칭하는 이도 많은거 같으니 최종에는 어떤 이름이 붙여질지 지켜볼 일이다.

 

태화산 천자봉이후의 능선.

이후로는 거의 찾는 사람이 없는가 보다.

낙엽이 발목까지 덮는곳이 태반이다.

 

빛바랜 표지기.

금계산 인근까진 그래도 이런 빛바랜 표지기가 아주 가끔씩 나타난다.

어쩌다 나같은 사람이 가끔 한번씩 금계산을 들렀다 가는 모양이다.

 

안타까운 산꾼들.

이런걸 보면 속상하다.

산을 찾는다는 사람들이 산에 저런걸 버린다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다신 산에 들지 말았으면 한다.

 

마루금에서 서쪽을 조망한다.

우측의 봉우리가 봉수산이고 , 좌측의 봉우리가 천방산이다.

그리곤 내가 지나쳐온 산줄기와 금북정맥의 꿈틀거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검단리 마을.

사방이 산에 둘러쌓인 전형적인 산골마을 이다.

내 어릴적 친구들이 많이 살던 동네이기도 하다.

갸들은 다 어디서 뭣하며 살꼬?

 

검단리 마을과 금계산.

 

이제부턴 법화산이 보인다.

금계산 좌측으로 얼굴을 삐쭉 내민게 법화산이다.

 

빛바랜 표지기2

아주 오래된 표지기인거 같은데 이분이 수체계도를 정립한 그분인가?

 

벌통놨던 자리.

 

두릅인데 때가 좀 지나 억세 보인다.

 

지나쳐온 마루금을 뒤돌아 본다.

 

용수골 마을.

참 오지게도 깊다.

여기 살던 광영이랑,광협이랑,병수랑은 어디에 있는지........

 

법화산이 한걸음 더 가깝게 다가왔다.

 

금계산도 이젠 제 왼쪽 옆구리를 숨김없이 보여준다.

곧 있으면 전면을 다 보여줄거다.

 

야생화.

이름은 모르겠으나 작으마한게 이쁘다.

 

호젓한 능선길.

아주 편안하고 좋다.

이런맛에 산을 찾는다.

 

칼날같은 능선.

금계산 갈림길을 지나치니 능선길이 갑자기 좁아지며 이런 칼날같은 모습을 한다.

이후로는 사람이 지나친 흔적이 전혀 없다.

법화산.

이젠 법화산도 코앞이다.

 

송림숲.

이런숲이 정말 맘에 든다. 

 

세동리 마을.

원랜 저앞의 느티나무쪽으로 내려섰어야 되는데 등로가 하도 불량하여 편한길을 찾았더니 약간 마루금을 벗어났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이중환의 택리지에 보면 전국에 기근과 질병 그리고 전쟁을 피하여 살수 있는 열곳을 지목하고 있는데 , 그중 한곳이바로 이곳 인근이다.

나도 처음 이동네를 찾았을땐 참으로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내 사는 인근에 이런곳이 있었다니........

전해들은 말에 의하면 6.25 전쟁이 터지고 한달도 더되서 이동네 사람이 유구장에 장보러 와선 "뭔일났슈?" 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전쟁이 난줄도 모를만큼 외부와 단절된 곳이었다는 반증일 게다.

 

 

세동고개의 보호수.

규모가 꽤 크다.

이 세동고개는 예전에 법화산을 오를때 한번하고 , 명절때 드라이브 삼아 몇차례 올랐었다.

 

세동리 마을.

지금 사진을 찍는 이곳이 해발 350m를 가리킨다.

그러니 저 마을도 거의 비슷할거다.

근래에는 아산쪽 토지보상을 받은 분들이 이근방 땅을 대토하는 바람에 외부인 유입이 꽤나 많아졌단다

저 마을 윗쪽에도 전원주택을 짓느라 터를 닦고 있다.

 

용목동 내림길.

저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용목동이란 동네가 나온다.

이 동네도 전기가 들어오는게 신기할 정도로 보통 외진곳이 아니다.

금계산 중턱쯤에 한 십여호 모여사는 동넨데 얼마전에 가보니 이곳도 전원주택이 꽤나 들어섰다.

아무튼 이곳 마곡사 인근의 주변은 십승지지가 말해주듯 인근에선 알아주는 오지다.

때문인지는 모르나 유구읍 인근엔 유독 이북출신 주민이 많은데 6.25때 십승지지설을 신봉하는 피난민이 밀려 들어 일어난 현상이라 한다.

 

 

금계산의 남동쪽 모습.

 

홍길동성.

법화산 정상의 홍길동성 이다.

홍길동이 성을 쌓고 관군과 대치했다는 설이 전한다.

규모가 너무나 작은걸로 봐서 아마도 관망용 성이었던것 같다.

 

아주 빛바랜 표지기.

여기 법화산까지 댕겨간이가 있다.

이후론 전혀 표지기를 볼수가 없다.

 

법화산 이후로 마루금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없다.

 

마루금을 잘못 그렸다.

저 벌목한곳 뒷편이 제대로된 마루금이다.

핑계김에 그냥 내려선다.

다시 올라서기가 싫다.

 

신달리 마을.

능선을 잘못타는 바람에 계곡을 따라 내려서는데 저만큼 앞쪽에 왠 모녀가 고사리를 꺽고 있다.

힐끗보니 낮이 익다.

내 중학교 동창 양춘이다.

항상 저보다 더큰 가방을 메고는 공부도 곧잘했던 양춘이.

지금은 유구읍사무소에서 근무 한다네.......

여적 결혼도 안했단다.

 

문암마을과 금계산 북서쪽 사면.

검단리 들어가는 버스를 타는 바람에 이곳 문암서 내려 걸어서 각흘고개를 오른다.

오르면서 금계산의 마지막 모습인 북서쪽 사면을 접한다.

이로서 오늘은 저 금계산을 한바퀴 완전히 돌았다.

 

문암마을서 각흘고개를 오르면서 한컷 남긴다.

 

참새와 허수아비 쌀막걸리.

문암마을의 가게에 들른다.

이곳도 내 초등,중학교 동창네다.

명희네......

사곡양조장에서 빚은 참새와 허수아비 쌀막걸리로 하루의 산행을 마무리 하다.

내 동네 산이라 그런가 더 좋다.

보고싶은 이들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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