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청 홈페이지에 가니 공주시 각마을의 지명유래에 대해 설명을 해놨더라.
아래 내용은 죄다 덕곡리와 관련된 내용들이다.
덕곡리외에 추계리 , 문금리 그리고 탑곡리의 지명유래도 같이 발췌하여 옮기려 했더니 아쉽게도 타동네건 없더라.
한편으론 요상한 맘이 들기도 하더라.
덕곡리만 무슨 특혜를 받는것도 아니고.............
하여 유심히 봤다.
근데 이 무슨 괘씸한 행태란 말이냐?
정확친 않지만 공주시의 마을 전체를 통털어 추계리랑 , 문금리 그리고 탑곡리만 빠진거 같더라.
그러니까 덕곡리가 특혜를 받은게 아니고 저 세마을이 차별을 받은거다.
덕곡리외의 마을에 살던 친구들아.......
니네동넨 세금 안내냐?
아니면 공주시장한테 뭐 잘못 보인거 있냐?
아니면 니네 동넨 무슨 아산시 구역이냐?
분개해야 된다.
오늘부터 공주시청에 줄기차게 항의성 민원을 넣어라.
아니면 아산시로 행정구역 개편시켜 달라고 하던가........
마을유래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건 기분 문젠거 같다.
그럼 공주시청 홈페이지에서 추계리 , 문금리 , 탑곡리의 마을 지명유래를 볼수있는 날을 기다리며...........
-아래글 중 파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공주시청 홈피에서 옮겨왔음을 밝힘니다.-
유구읍 (덕곡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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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고대촌〔산〕 |
내 용 |
[위치] 극정봉의 남동쪽에 위치한 산. |
[유래] 고씨네 묘가 예전부터 있었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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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고대촌〔산〕 |
내 용 |
[위치] 극정봉의 남동쪽에 위치한 산. |
[유래] 고씨네 묘가 예전부터 있었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고대촌은 종대 구역이니 종대가 잘알거 같은데........
종대야 맞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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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광산골〔골〕 |
내 용 |
[위치] 산막골의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
[유래] 금광이 있던 골짜기이며 1950년대까지는 채광하였으나, 그 후에 폐광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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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구당골, 당골〔마을〕 |
내 용 |
[위치] 양지뜸의 남서쪽 마을. |
[유래1] 당골의 마을이 처음에 여기에 있었다 하는데 고려 말엽에는 李太祖의 등 극을 싫어하여 선비들이 초막을 짓고 草根木皮(초근목피)하며 절개를 지 킨 몇몇 선비가 있었다 한다. |
[유래2] 산제당이 있는 골짜기와 접해 있다 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
[유래3] 구당골에 산제당이 있어서 산제당이 있는 마을은 구당골이라 부르고 이 마을은 당골이라 부른다. 堂谷(당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을의 역사가 조선의 개국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구나.
알고보니 지조 있는 마을 이었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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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다랫골, 다리골〔마을〕〔골〕 |
내 용 |
[위치] 양지뜸의 남동쪽에 위치한 골짜기. |
[유래] 마을에 다래나무가 많아서 다랫골이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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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덕곡골〔골〕 |
내 용 |
[위치] 덕암초등학교 동쪽에 위치한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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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덕암(德岩)〔마을〕 |
내 용 |
[위치] 당골 북쪽. |
[유래] 마을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기도를 하면 덕망있는 사람이 된다고 전하며 자식없는 사람이 이 바위에서 백일 기도를 하면 덕망있는 아들을 낳는다 한다. 이 유래에 기인하여 德岩이라 부르는 마을이다.
예전에 덕곡리는 덕암리와 당곡리란 동네로 구분이 되어 있었다더라.
덕암의 덕자와 당곡의 곡자를 합쳐 덕곡리라 하였고 , 덕암초등학교란 명칭이 저 덕암이란 마을에서 유래 됐다고 하더라. 또한 마을에 있었다던 큰 바위는 아마도 범바위를 이르는 말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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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마단친골, 말안칩골〔골〕 |
내 용 |
[위치] 머그네미의 남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
[유래] 절이 있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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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머그네미〔마을〕 |
내 용 |
[위치] 마을 회관의 북서쪽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 |
[유래]오동나무가 많은 골짜기라 하여 유래된 지명이며, 과거에는 오동나무를 머 그나무라고도 했다 한다.
머그네미란 명칭이 오동나무가 많은데서 유래됐다는 설명인데 난 아무리봐도 이건 아닌거 같더라. 머그네미 사는애들은 알겠지만 우리동네 어디께 오동나무가 많더냐? 내보긴 저 네미란 명칭에 답이 있을듯 싶다. 네미란 ~의 너머란 뜻으로 주로 쓰여지거나 혹은 고개이름에 붙여지는 경우가 많더라. 그러니 저 머그네미란 명칭도 저와 관련이 있을거 같긴 한데........ , 배티의 너머를 배티네미라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허나 저런식으로 설명이 되려면 근방에 머그라는 지명 혹은 그와 유사한 지명이라도 있어야 될텐데 확인이 안되니 이부분도 아닌거 같기도 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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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배나무골〔골〕〔마을〕 |
내 용 |
[위치] 머그네미의 서쪽 골짜기. |
[유래] 배나무가 많아서 유래된 지명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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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부엉산〔산〕 |
내 용 |
[위치] 머그네미의 북서쪽에 위치. |
[유래] 공주시와 예산군의 경계에 있으며, 특별한 유래는 없다.
인근 주민들은 주로 '붱산'이라 발음을 하는데 , 덕곡리서 저 붱산을 넘어가면 탑곡리 소릿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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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붉은 바위골〔골〕 |
내 용 |
[위치] 머그네미 북쪽에 위치한 골짜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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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산막골〔골〕 |
내 용 |
[위치] 감나무골과 배나무골 사이에 위치한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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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산제당골〔골〕〔산제당〕 |
내 용 |
[위치] 구당골의 남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
[유래] 산제당이 있는 골짜기이며, 음력 1월 14일에 산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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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신흥〔마을〕 |
내 용 |
[위치] 마을회관이 있는 마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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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양지말〔마을〕 |
내 용 |
[위치] 신흥, 구당골의 북서쪽에 위치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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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웃말골〔골〕 |
내 용 |
[위치] 머그네미의 북쪽에 위치한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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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윤봉오묘(尹鳳五墓)〔묘〕 |
내 용 |
[위치] 덕곡리. |
[유래] 그의 자는 季章이고, 호는 石門이며, 시호는 肅簡이다. 1746년(英祖 22年) 에 정시문과에 급제하고 弼普, 副修撰, 校理 등을 거쳐 홍천 현감으로 나 갔다가 1759년 동지의금부사, 대사헌에 올랐다. 서기 1763년 特進官, 判敦 寧府事를 겸하고 1768년 사직을 거쳐 다음해 우참찬으로 者老所에 들어간 문신이다.
내 생각엔 구당골의 그 큰 묘소를 이르는 말인거 같은데 나중에 기회되면 비석을 한번 확인해 보려 한다. 아니면 종대가 한번 확인해 줬으면 좋겄구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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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장자골〔마을〕 |
내 용 |
[위치] 구당골의 서쪽 골짜기. |
[유래] 장자골에 큰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마을 일도 자기 마음대로 하였다. 돈이나 재물 을 베푸는 데는 인색해서 걸인이나 중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그래서 돈푼이나 있 어서 큰 소리를 치지만 마을에서는 인심을 잃고 있었다. 하루는 허름한 중이 집에 찾아와서 목탁을 치며 시주를 원했는데 사랑방에서 담뱃대를 탁탁 털던 장자는 미 다지 문을 확 열고는 버선발로 뛰어 나와선 중의 바랑을 번쩍 벗기더니 마당에 팽 개치는 것이었다. 마당에는 바랑 속에 들었던 곡식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리고선 돌아서는데 중이 우두커니 서 있다가 말하기를 "조금만 노력하면 만석꾼이 될텐데… 그걸 가르쳐 드리려고 왔는데…" 하고 입맛을 쯧쯧 다시는 것이었다.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이 말을 들은 장자는 그 말이 솔깃해서 "그래요. 허… 참 내가 큰 실수를 했구만, 어디 어떻게 하면 내가 만석꾼이 되겠소." 하고 웃으면서 다가오는 것이었다. 중도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덕곡리 장승터에 있는 바위를 깨서 두 조각으로 만들면 당장 만석꾼이 되겠소이 다." 하고선 앉아 곡식을 쓸어서 바랑에 담더니 총총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중이 돌아가자 장자는 당장에 석수쟁이를 불렀고 그리고선 그들에게 이 밤이 새도록 바 위를 두 조각으로 깨면 보수를 배로 주겠다고 하므로 석수쟁이 몇 사람은 열심히 돌을 깨기 시작하여 새벽까지 두 조각을 만들어 놓았다. 장자는 이제 만석꾼이 되 었다고 기뻐서 석수쟁이에게 돈을 듬뿍 줘서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부 터 집안에 우환이 생기고, 다음 해는 곡식에 병이 생겨서 모두 이삭을 맺지 못했 다. 그런 일이 연거푸 일어나 3년내에 그 장자는 완전히 거지가 되었다. 마을에서 재물이 나가지 못하게 바위가 막고 있어서 그나마 장자로 살았는데, 그 바위를 깨 버리자 재물이 새나가는 바람에 인색한 장자는 거지가 된 것이다.
난 여지껏 구당골의 서쪽 골짜기에 장자골이란 골짜기가 있는줄도 몰랐고 , 또 이런 전설이 내려온단 얘긴 들어보도 못했다. 종대야! 넌 들어본적 있냐? 어쨌든 이 전설속에 등장하는 덕곡리의 장승터라 함은 서낭댕이를 이르는 말인거 같고 , 석수쟁이가 밤을 세워 두조각을 내었다는 바위는 우리 어릴때만 해도 가끔식 올라서 쉬어가던 그 바위 두개를 이른는 말인거 같다. 지금보니 그 두개의 바위는 아예 사라지고 없더라. 다만 그 두개의 바위대신 이젠 커다란 두개의 석장승이 마을에서 재물이 새어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으니 앞으로 덕곡리는 큰 부자 마을이 될거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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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명 |
홉내골, 홈내골〔골〕 |
내 용 |
[위치] 머그네미의 남동쪽 골짜기.
홉내골 혹은 홈내골이라 표현한 이곳이 아무래도 우리가 어릴적부터 '혼내깔' 이라 부르던 곳을 가리키는거 같다. 그렇다면 이 설명도 좀 문제가 있다. 알다시피 혼내깔은 골짜기가 아니다. 내깔이다. 내깔이란 냇물의 고어 혹은 사투리 일거다. 혼내깔은 웃말쪽과 도랑골 쪽에서 흘러드는 물길이 합쳐지는 곳이니 아마도 내깔이 합쳐진다는 의미에서 합내깔로 불리다가 홉내깔 - 혼내깔로 변한거 같다. 그러니 저처럼 골짜기 개념으로 홉내골이라 표현한건 뭔가 2%가 부족해 뵌다. | | |
그리고 중요한 한가지가 빠졌다.
덕곡리의 자연마을은 크게 다섯군데로 구분할수 있다.
구당골 , 당골 , 대리골 , 머그네미 , 도랑골
근데 보다시피 도랑골이 빠졌다.
나도 저 도랑골이란 지명이 어디서 유래된건지 궁금하긴 한데 당췌 알길이 없구나.
도랑치고 가재잡다 할때 그 도랑처럼 생겼다고 해서 도랑골 인가?
아무래도 이건 창수 니 숙젠거 같다.
한번 알아봄이 어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