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봉우리 오르기

흑성산 네번째(교촌리서 독립기념관 거쳐 원점회귀.........)

산살사 2009. 9. 27. 21:41

언      제?   2009년 09월 27일 해날

누  구 랑?   나혼저.......

어      딜?   교촌리-흑성산-독립기념관-목천-교촌리

도상거리?   8.0km

소요시간?   3시간 17분

 

오랜만에 우중산행을 한다. 

 

오늘 산행의 발자취.(연두색 궤적)

  

오늘은 어디를 갈까를 고민하며 베란다를 내다보니 흑성산이 힌트를 준다.

'뭘 그런걸 고민혀고 그려? 일루와'

 

또다시 흑성산 이다.

다만 아까 보던 모습과는 정반대 쪽에서 보는 모습이다. 

목천읍 교천리서 보는 모습이다.

 

조 앞쪽서 우로 드는길이 흑성산 정상까지 연결되어 있다.

언젠가 한번 가족들과 함께 차를 끌고 올랐다가 얼마나 쫄았던지 모른다. 

 

교촌리 입구에 주차를 하고 주변의 산세를 살펴본다.

몇몇 낮익은 산들이 보인다.

우선 빨간건 성거산 , 파란건 중구단맥상의 469봉.

모두 지난주에 올라봤던 산줄기 들이다.

 

땡겨본 성거산.

 

땡겨본 469봉. 

 

약간우측.

469봉(빨간점) 우측으로 뵈는산은 중구봉의 정상으로 대접을 받고있는 435봉(파란색) 인듯 하다. 

 

땡겨본 435봉. 

 

435봉(빨간거) 앞쪽의 저 봉우리(파란거)는 아마도 돌탑이 쌓여있던 그 봉우리 인듯 하지만 장담은 못하겠고........... 

 

지도상엔 교촌리 , 여기엔 교천리.

어떤게 맞능겨? 

 

다시한번 흑성산 정상부를 눈속에 담아두고.........

'자 이젠 올라볼까나?'

 

무료하게 이런 시멘트 포장길을 따르다. 

 

가끔은 이런 비젖은 숲길에 들기도 하고........ 

 

또다시 시멘트 포장길에 들었다가.......... 

 

또다시 숲길에 들기를 여러차례.......... 

 

결국은 이렇게 정상에 섰다.

정상엔 이렇게 KBS 시설이 들어서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흑성산성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안내판을 접하고.......... 

 

KBS 방송 시설에 대한 안내판도 접한다.

수원성을 모태로 하여 세운 시설이라 하고 , 흑성산이란 이름에 걸맞게 현무암과 같은 검은 벽돌로 축조를 했다 한다.

또한 송신안테나 역시 장승을 모방하여 세웠단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보긴 그저 흉물일 따름이다.

 

한켠엔 흑성산에 대한 안내판도 섰다.

흑성산의 본래 이름은 검은성 이었던것을 일제가 한자화 해서 흑성산으로 바꿨다는 내용이고 , 이곳의 지세가 금계포란형의 길지이며 , 또 암행어사 박문수의 묘소를 원래는 지금의 독립기념관 자리로 잡았던 것을 당시의 유명한 지관이 이곳은 후세에 나라에서 요긴하게 쓸 곳이니 다른곳에 쓰라하여 은석산으로 옮겼다는 설명이다.

 

실질적인 흑성산의 정상부도 바라보고..........

가다보니 조앞 접시 안테나께 철조망엔 SBS 시설이란 안내판이 붙었다.

KBS 시설과는 많이 차이가 난다.

암튼 KBS건 SBS건 공정한 보도를 위해 많이 노력해 줬으면 한다.

 

한켠에 초라하게 서있는 정상석 좌측의 계단을 타고 내려선다.

오늘은 독립기념관으로 내려서 볼까 한다. 

 

빼꼼히 뵈는 취암산.

내눈엔 그 너머로 희미하게 내집도 뵌다.

지금쯤 내 사랑하는 사람과 내 두 살점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나를 그리고 있을거다.

 

돼지감자 꽃. 

 

흑성산 남사면의 활공장에 섰다.

전망이 참 좋은 곳이다. 

흐릿하긴 하지만 요앞에 독립기념관이 뵈고 , 그 우측으로 흘러가는 흑성단맥의 능선과 백운산(빨간거)과 세성산(파란거)도 뵌다.

 

땡겨본 독립기념관. 

 

땡겨본 백운산과 그 우측으로 들어선 우정힐CC. 

 

정동쪽인 저쪽은 지난주 밟았던 중구단맥의 능선. 

 

요기서 좌로.

여기서 부턴 처음 걷는 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선 곳. 

독립기념관 내부다.

 

요 푯말이 선곳서 등산로가 시작된다. 

 

그동안 독립기념관을 여러차례 찾았지만 한번도 와본적이 없던 곳이다.

독립기념관 내부의 제일 윗쪽에 자리잡은 곳이다. 

 

'피땀으로 지켜 이 터전을 물려주신 가신 임들의 고마움을 되새겨 겨레여 이나라를 길이 빛내자' 

 

이곳이 추모의 자리 란다.

105계의 층계는 일제때 105인 사건을 상징하는 거고 , 105m의 부조는 민족의 영원무궁함을 나타내었고 , 중앙의 분수대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민족 생명의 샘을 의미하며 , 양 옆에는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봉화대를 세웠단다.

난 봐도 잘 모르겄다. 

 

난 여지껏 남강 이승훈이란 분이 어떤 분인지 몰랐다.

알아보니 참으로 훌륭한 분이셨다.

민족대표 33인중 한분이며 끝까지 변절치 않은 몇 안되는 민족 대표중 한분이셨다

부끄럽다.

이런분을 여지껏 몰랐다는게.........

저분께서 하셨다는 저말씀.

우리 민족 모두가 뼛속깊이 새겨야할 명언이라 생각한다.

남의 힘을 빌어 나라를 지키려 하는 분들.

특히나 비용이 많이 든다고 전시작전통제권을 이양받아선 안된다고 주장하던 분들.

자주 국방을 지향하는 대통령을 빨갱이라 몰아대던 전직 별들.

저들을 향해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남강 이승훈님의 명언을 옮겨본다.

우리가 할일은 민족의 역량을 기르는 일이지 남과 연결하여 남의힘을 불러들이는 일이 아니다.

나는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올때 제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일이 없다.  

                                                                                                                        1922년 봄   남강  이승훈

                                                                                                   

이승훈 님의 말씀이 새겨진 비석옆에 무척이나 많은 열매를 맺은 모과나무가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겨레의 집에서 보는 비내리는 독립기념관.

저탑 이름이 뭐였더라?

웅비탑 이라 햇던가?

여하튼 저탑 우로 뵈는산이 세성산 이다.

 

뒤돌아본 겨레의집과 흑성산. 

 

올려다본 탑의 모습. 

 

그렇게 독립기념관을 나서 목천읍내를 지나 처음 산행을 시작했던 교촌리 입구에 이르렀다.

저멀리 처음 산행을 시작했던 능선이 보인다.

빗속의 짧았던 산행은 이렇게 마무리를 짓는다.

 

이젠

좀더 높은산.

좀더 급한산.

그리곤 심장이 터질듯 숨이 가빠오는 그런 큰 산이 그리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