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인지맥 두번째(어르목고개서 공세리까지)
ek.언 제? 2009년 1월 4일 해날
누 구 랑? 나혼저
어 딜? 어르목고개-국사봉-어라산-성내고개-금산-투구봉-배티고개-39번국도-연화봉-깃대봉-영인산-복흥골-입암산-공세리
도상거리? 20.4km
소요시간? 8시간 05분
어느덧 신년연휴도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가족들과 조촐한 나들이 한번 하지 못하고 , 특별한 이벤트 하나 없이 3일이란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한편으론 가족들한테 미안하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다.
애초의 약속대로 나흘 연휴중 이틀은 나를 위해 쓰기로 했으니 떳떳하게 집을 나선다.
들머리쪽서 본 오늘산행의 발자취.
여긴 날머리쪽서 본거.
다시찾은 어르목 고개다.
저앞의 비석옆으로 든다.
등로 입구엔 이런 이정표가 섰다.
국사봉이 코앞이다.
여기가 국사봉 정상이다.
내가 가본 산중 여기가 여섯번째 국사봉 이다.
산림청인가 어딘가서 발표한걸 보니 우리나라 산이름중 가장 많은 이름이 봉화산이고 그다음이 국사봉 이란다.
아닌게아니라 국사봉이란 산이름 참 많다.
국사봉 인근서 가야할 마루금을 가늠해 본다.
마루금은 크게 반원을 그리며 좌측으로 휘돌아 간다.
어라산도 코앞이다.
여기가 어라산 정상이다.
역시나 정상석은 없다.
이산 남쪽에는 우리 민족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묘소가 있다.
금산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지난다.
또 지난다.
이런 벤취와 평상과 운동시설이 설치된 능선도 지난다.
이정표를 또 지난다.
여기가 성내고개다.
이고개는 나도 첨 와보는 곳이다.
이정표가 또 있다.
이정표를 참으로 많이도 세워뒀다.
여기 또 있다.
이게 도대체 몇개짼지 모르겠다.
근데 사골?
사골육수할때 그 사골?
여기가 금산 정상이다.
역시나 정상석은 없다.
별다른 특징도 없다.
여기는 투구봉 정상이다.
여긴 별다른 특징이 있다.
정상에는 저렇게 괜찮은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저 바위에 올라서면 전망이 끝내준다.
투구봉 정상서 바라보는 가야할 마루금 방향이다.
저 앞쪽의 배티고개로 내려섰다 39번 국도를 건너 영인산으로 향하는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 온다.
여긴 아산온천 지대다.
그러니 투구봉은 아산온천 뒷산이 되는거다.
사진상엔 안보이지만 요밑에 눈썰매장에 사람들이 꽤 많다.
우리 애들은 올해 썰매한번 태워주지 못했구나.
갑자기 애들한테 많이 미안해 진다.
허나 아직 이 겨울이 다 간건 아니다.
하여튼 이구간 이정표 겁나게 많다.
동심사 방향이다.
산불감시초소도 지난다.
배티고개 방향 이다.
여기서 좌로 가야 된다.
우측길이 더 뚜렷하기땜에 주의해야 된다.
이 파라다이스 모텔 주차장으로 내려서게 된다.
저 철계단을 타고 내려섰다.
파라다이스 모텔 주차장서 바라보는 영인산 이다.
여기가 배티고개다.
저앞서 우로가야 된다.
여기서 좌측지대가 더 높기때문에 여차하면 그쪽을 마루금으로 착각할수도 있겠다.
저 막다른 도로끝서 좌측 산으로 들어야 된다.
여기선 우로 간다.
여기 나무와 나무사이에 뭔철사가 뵐거다.
올미다.
표준어론 올무라고 할거다.
크기로 봐서 고라니를 잡기위한거 같다.
나도 한땐 저 올미로 토끼정도는 꽤나 잡아 봤다.
잘했다는게 아니라 그땐 이런행위로 욕먹을 만한 시대는 아녔다.
지금이야 내가 산에 살게 되더라도 이런 행위는 안할거다.
지금은 그런 시대도 아니고 또 그때의 나도 아니다.
어쨌든 살짝이 걷어내고 왔다.
마루금 우측으로 이런 거대한 바위가 눈에 들온다.
그리곤 저 바위 우측으로 표지기들이 붙었다.
제 마루금은 여기서 좀 더 직진을 해야 되지만 어차피 39번 국도로 인해 끊기게 되니 이리들 내려서는 모양이다.
물론 나도 내려선다.
그렇게 내려서니 39번 도로를 만난다.
저앞쪽에 보이는 곳이 제 마루금 일거다.
우측으로 저렇게 굴다리가 뵈길래 통과 한다.
영인산 자연휴양림 입구에 닿게 된다.
저앞쪽에 매점에서 어묵으로 몸을 좀 녹이고 , 막걸리도 한통 샀다.
영인산 자연휴양림 안내도를 찬차니 훑어보고 간다.
그리곤 제 마루금과 최대한 근접하게 저리로 든다.
임도를 조금 따르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지맥능선으로 붙는다.
이게 영인지맥의 능선 이다.
정상이 5.83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접한다.
저 거리표기가 맞나?
아무래도 너무 짧은거 같아서.............
수암사 갈림길을 접했다.
저쪽 능선은 몇해전에 먼저 나온 놈이랑 한번 올랐던적이 있다.
그러니 여기서부터 영인산 정상을 넘어 세심사 갈림길까지는 한번 밟았던 능선이 되는거다.
멀리 영인산과 깃대봉 그리고 연화봉에 설치된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이 보인다.
탑이름 참 길다.
영인면소재지와 영인저수지가 보인다.
저기 눈썰매장도 보인다.
저 눈썰매장도 몇해전에 가봤던 곳이다.
남쪽 조망인데 그다지 선명치 못하다.
저앞에 구름밑에 있는 산이 광덕산 이란거 정도만 알겠고 , 나머지는 장담을 못하겠다.
저기 상투봉이 뵌다.
오늘로 여기 영인산이 다섯번짼데 여지껏 저 상투봉은 가보지 못했다.
역시나 오늘도 그냥 지나 친다.
담에 기회한번 만들지 뭐..........
여긴 원제 이리 변했다니?
첨본다.
상투봉 바로밑까지 이렇게 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정상이 도대체 얼마가 남았대능겨?
여기가 흐느잰가?
지나온 지맥길을 돌아본다.
지맥길 옆으로 또 뭔 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뭘까?
영인산 휴양림 앞을 지나친다.
영인산과 깃대봉 그리고 연화봉이 코앞가지 다가섰다.
이 거북이가 뱉어내는 침도 한모금 먹고 간다.
하마터면 바닥의 저 얼음에 넘어질뻔 했다.
애들한테 재밌는 모습 보여줄뻔 했네..........
지나온 지맥길이 훤히 보인다.
저앞에 노란색 화살표가 아산온천 이다.
그러니 그 좌측능선쯤에 금산과 투구봉이 있을거고 , 온천뒤로 국사봉도 보인다.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에 다다랐다.
탑은 여기 연화봉에 섰다.
연화봉서 상투봉을 조망한다.
상투봉뒤로 뵈는산이 광덕산(노란색)이 분명해 보인다.
탑주위를 병풍처럼 휘두르고 그곳에다 수많은 글씨를 새겼다.
하도많아 다 읽는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릴거다.
한자도 많아 중간중간 흐름도 끊긴다.
아마도 이거 전문을 다 읽어본 사람도 얼마 안될껄?
근데 난 다 읽었다.
다만 현장서 읽지 않고 사진을 찍어다가 집에와서 읽었다.
아래는 비문 전문이다.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 명문
영인 현충으로 피어오른 민족의 담시
배달겨레 대한 땅 역사의 구비마다 그물길 거세었던 충절의 고장 서녘벌 그 험난 물결 일때마다 여기 산하의 정기도 사무치며 언제나 겨레의 큰 얼이 솟구쳤으니 이곳 아산땅은 진정 겨레의 큰 숨결이요 역사의 긴 터전이어라. 그 터전 물뭍으로 배어나니 군자국의 지령위에 여기 영인산이 우뚝하고 태극의 광명 따라 해와 달도 해맑으니 불사조의 인걸이라 현충사도 저 멀리 성스럽다. 세계사가 서기로 열리던 바로 이천년전 그때 동방의 이 고장은 이미 비류백제의 도읍지였으니 인주면 밀두리는 유서깊은 미추홀 옛땅이요 그 문화 일찍이 바다 건너 왜 땅을 깨우치니 우리의 오랜문화 오늘도 저 일본 일으켜 온 문명의 참 씨앗이었네. 아산만 깊은 사연 서해안의 오랜 요로 그 옛날 칠세기에 백강으로 밀어 오른 나당의 연합군이 우리 왕조 백제를 힘으로 종말지니 조국의 명운앞에 이 고장은 언제나 국난 거세었던 애환의 여울목 하건만 같은땅 온정주는 예부터 충청 서역의 중요한 전략 요충 바로 이곳에서 팔년의 항쟁 끝에 끝내 그 당군을 이겨내니 여기서 민족사는 진실을 말하누나 삼국의 통일은 우리 백제 고구려의 멸망 그 뒤에서가 아니라 진정 동방의 이 겨레가 저 대륙의 강국 당과 싸워 이긴 민족적 승리위의 금자탑 이었다고 그 승리의 활력 정녕 이 역사의 지하수 였어라. 뒷날 저 무서운 수십년 대몽 항쟁 속에서 그 물길 더욱 세차게 다시 뿜어 오르니 이곳 영인산이 바로 그 끈질긴 항쟁의 본거지 여기에 저 천안 평택등의 주민까지 합해 이 충남 중서부의 한덩어리 되어 피흘린 입보처마저 이뤘으니 저 신성산성 무명산성 등에는 당시 생활속의 항쟁들이 그대로 온 백성의 의병으로 물결처 나왔다. 바로 그 속에서 우리 수군 이천장군의 큰 승리가 이곳 선장 지방에서 또한 빛났으니 대륙 몽고군에 대한 이같은 승리는 뒷날 틀림없이 임진왜란에서 저 해양의 왜수군을 물리치는 겨레의 더욱 큰 승리로 솟아 이겼다. 아 충무공 우리의 이순신 장군 그님은 분명 이기면서 죽었고 죽으면서 다시 이겼다. 이 몸이 죽기로써 싸운다면 온 겨레가 함께 살 것이니 그 큰 생명이 곧 필사즉생 여기에 모두가 제 한몸 살기만을 꾀한다면 온 민족사가 그대로 끝나리니 그 뼈아픈 교훈은 바로 필생즉사 그것은 참으로 생사를 초월하여 이 겨레를 영원히 살게하는 실로 값진 불사조의 활명수라 바로 그 활명수를 한몸에 가득 안고 장군은 이곳 그 극?의 영광만은 반드시 이 조국의 아만이 거둘수 있는 법 여기서 세계는 지금 동방의 앞날이 새롭게 태평양 시대로 열리고 바로 중심에서 우리의 신한국은 뜻깊은 서해안시대로 밝게 타오르고 있으니 저 일백년 전은 왕조말의 역사요 오늘은 그대로 새 역사의 앞머리라 여기서 지난 세기 왕조말의 황혼속에 세계사의 변두리로 밀리며 시달렸던 이 곳 아산땅에는 바야흐로 이 조국 대한이 오늘의 양극 갈등을 초극하는 도덕적 통일의 승리를 통해 온 세계 십방으로 뻗으며 새세기를 열어가는 이 민족사의 여명 서광이 여기 너무나도 확실 무공하여라. 최장규 지음.
저앞으로 보이는건 깃대봉 이다.
가보자.
깃대봉 정상 이다.
이제 이 지맥길의 끝점도 서서히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저앞에 상처입은 산이 입암산(노란색) 이다.
여기서 지맥길의 막바지 모습을 유심히 보고가야 된다.
영인산만 넘으면 지맥도 끝이려니 쉽게 보고 갔다가 엄청 고생을 했다.
영인산 이후로 길찾기도 난해할 뿐만아니라 저앞에 보이는 복흥골(빨간색) 이후론 까시덩쿨과 잡목에 꽤나 시달려야 한다.
저기 고용산이 뵌다.
저긴 현대자동차 아산공장(노란색) 이다.
내 처가 동네다.
영인산구간의 지맥길을 뒤돌아 본다.
크게 반원을 그리며 이곳까지 이르는 능선이 한눈에 들온다.
연화봉도 내려 본다.
저기가 정상 이다.
또 가자.
정상 바로 못미쳐 세심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이른다.
정상서 숨한번 돌리고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 나와야 된다.
뭔 전망대를 짓는 중이란다.
영인산 정상의 풍경이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영인산은 작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산이다.
명산이 갖춰야할 조건은 다 갖췄다.
대한민국이 작지만 강한나라 라면 , 영인산은 작지만 아름다운 산이다.
영인산 서쪽은 또 언제부터 저리 골프장이 들어서고 있다.
작지만 아름다운 산 영인산은 이렇게 사방팔방으로 파헤쳐 지고 있다.
도고산(노란색)만큼은 또렷하게 뵈네.
바위가 거북이 머리처럼 생겼다.
저 나무는 언제나처럼 저리 외롭게 서 있구나.
여기가 주요 갈림길 이다.
이 묘가 있는 봉우리서 좌회전 해야 된다.
아까 깃대봉 정상서 보면 여기서 우로가는 능선도 꼭 입암산까지 연결된거처럼 보인다.
허나 이능선은 예전에 내가 한번 타봐서 안다.
채석장 우측을 거쳐 수자원공사 건물쪽으로 내려서는 능선이다.
지맥길은 세심사 바로 뒷편으로 흘러간다.
저절도 수없이 다녀갔던 절이다.
내아버지랑도 다녀갔었고 , 내 가족들이랑은 여러번 다녀 갔었다.
옛날에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에 저기 세심사를 오르는 진입로 어디메쯤서 한근도 더되는 봉냥을 캔적이 있었다.
그때 캤던 봉냥은 아직까지도 내 최고 기록이다.
그때 내옆엔 아버지가 계셨다.
산양리 , 강청리 그리고 서원리 이근방 산줄기들은 그때당시 아버지랑 봉냥캐러 댕긴다고 왠만큼은 밟아봤던 곳이다.
벌써 20년도 더된 시절의 얘기다.
아버지가 그립다.
골프장을 짓는다고 많이도 파먹었다.
한참을 내려서다 영인산을 돌아 본다.
또 올껴.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이건 아까 영인산 입구서 산 막걸리다.
결국은 한잔도 못먹고 버렸다.
도저히 맛대갈도 없고 , 써서 못먹겠다.
예전에 한남금북정맥 탈때도 살티재서 두잔인가를 갱신히 먹고 버렸던 그놈과 같은 놈이다.
이놈밖에 없어 할수없이 샀더니 이건 아니올시다다.
괜히 돈만 베렸다.
위태위태 하더니 결국은 마루금을 놓쳤다.
길도 없고 간벌까지 해놔서 요쯤서 고생꽤나 했다.
영인산 내림길부터 입암산에 오를때까지 구간이 도심구간을 빼곤 최악의 구간이 아닌가 한다.
저기 포크레인이 난도질을 하고 있는 곳 좌측의 능선이 지맥 능선이다.
마루금은 저앞으로 이어 진다.
이길을 넘어가면 아까 뵈던 골프장과 연결 된다.
이 절개지가 영인지맥의 마루금 이다.
처참하다.
마땅히 오를길도 안 뵌다.
하여 적당한 오름길을 찾으며 우회 한다.
한참을 가도 오름길이 마땅찮다.
결국은 엄청난 거리를 우회 했다.
그래서 그냥 쭈~욱 우회만 했다.
아마도 정상적인 마루금을 따라왔다면 저 농가 뒷편서 전봇대쪽으로 흘러가지 않나 싶다.
어쨌든 영인지맥도 이렇게 찜찜한 구간을 남겨놓게 됐다.
지난번 봉수단맥때처럼 나중에 한번 땜빵을 해야 맘이 편할거 같다.
영인산을 뒤돌아 본다.
앞에서 아무리 이정표를 세우고 정상석을 세우고 등로를 개발하네 어쩌네 부산을 떨면 뭐할건가
뒷통수는 저리 파헤쳐지고 있는것을..........
어쨌든 허가는 시청서 내줬을거 아녀........
암튼 그렇게 이 도로에 내려섰다.
마루금은 저 버스정류장 뒷편으로 흘러 간다.
여기가 냉정리 복흥골 이란건 이 버스정류장을 보고 알았다.
그동안 처가갈때 수없이 지나다니던 길이 었는데 이곳이 지맥능선 인줄은 미처 몰랐었다.
시내버스 시간표를보니 부지런히 가도 공세리서 3시 50분차를 타긴 글른거 같다.
널널히 가서 5시 10분 차를 타야 되겠다.
밟지 못한 마루금을 한번 뒤돌아 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오늘이 끝이 아니다.
내 꼭한번 다시 찾으마.
제 마루금은 그 도로를 횡단한후 저곳으로 들어서는게 맞다.
허나 선답자의 산행기에 보니 저곳은 사슴목장 철조망으로 막아놔서 진입이 불가 하댄다.
하여 저 도로를 따르기로 했다.
영광이앤지 회사 진입로다.
회사를 왼편으로 비껴 숲에 드는데 이곳서 부터 입암산에 오를때까지 엄청난 넝쿨 구간이다.
특히나 찔레나무가 많아 옷가지를 잡아끌기 일쑤고 , 멍가넝쿨 , 아까시 나무 가시에 엄청 긁히메 간다.
길도 불분명 하여 헤메기도 많이 헤멨다.
하여튼 영인지맥이 막판에 쉽사리 갈길을 내주지 않고 싶은 모양이다.
안동권씨 묘역에 들어 마루금을 뒤돌아 본다.
그리곤 꽤 헤멨다.
넝쿨숲을 꽤 헤집고 나서야 이 공장을 접한다.
이 공장을 우측으로 돌아나가야 제 마루금을 따르게 된다.
공장 너머로 입암산(노란색)이 바라다 뵌다.
바로 코앞이다.
바로 닿게 될줄 알았다.
허나 아니었다.
한참을 돈다.
넝쿨숲을 한참을 헤메고 댕기다 만난 표지기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긴 맞는거 같아 조금은 안심이 된다.
저기 입암산(빨간색)이 또 뵌다.
바로앞에 뵈긴 뵈는데 맘처럼 가까워지지가 않는다.
여기 올미가 또 있다.
또 걷어냈다.
능선 우측으로 조금은 낮익은 곳이 뵌다.
아마도 조 밑에가 피라클랜드 일거다.
입암산은 아까보다 더 멀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아까 그 공장서 마루금은 바로 입암산쪽으로 향하지 않고 한참을 돈다.
이게 마루금 산행의 특징이다.
물을 건너가지 않기땜에 가까운 거리도 이렇게 멀리 돌아가게 되는거다.
양지바른 묘지에 앉아 영인산도 한번 바라 본다.
고용산도 한번 바라 본다.
보다시피 고용산 한쪽도 저리 삽질을 해놨다.
이산저산 맛이라도 보려는듯 참 많이도 건드려 놨다.
하여튼 최악의 구간을 헤집고 진행하다 보니 결국은 올것이 온다.
요앞에 훤한곳에 막 이르니...........
여기가 나온다.
참으로 처참하다.
할말이 없다.
그리고 또하나.
왠만하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어야 되지 않나 싶다.
이 채석장 절개지에 이를때까지 경고판하나 접하지 못했고 철조망이나 목책 또는 로프하나 설치된거 보질 못했다.
야간 산행하단 개죽음 당하기 쉽상이겠다.
하여튼 절개지 좌측으로 우회해야 된다.
저게 아까 그 공장이다.
가까운 거리를 참으로 멀리도 돌아왔다.
절개지를 우회하다 끊어진 마루금을 가늠해 본다.
아마도 저 노란색서처럼 흘러갔을 거다.
영인산쪽 채석장도 보자.
저기도 직접 가봤는데 저곳도 막상 가보면 할말을 잃는다.
당연히 해야되는걸 하는거겠지만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이건 심한거 아닌가 하는 맘뿐이더라.
암튼 약간의 잡목을 뚫고 마저 오르니...........
입암산 정상이다.
내눈엔 저 왼쪽의 바위도 꼭 거북이 머리처럼 생겼고 , 저 정자는 꼭 거북이 등위에 올라탄거럼 보인다.
입암산도 전망이 꽤 좋다.
여긴 냉정저수지다.
예전에 몇번 낚시를 했던 기억이 있다.
저앞에는 삽교천 방조잰거 같은데 맞나?
2006년에 세운 입암정이란 정자다.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뒷통수는 갉아먹고 앞통수엔 이런걸 세우고.............
산이 말이 읎다고 얕잡아 보능겨?
측은한 마음으로 입암산을 한번 더 돌아보곤 또 갈길을 재촉한다.
'입암산아 네가 용서해라.'
입암산부터 공세리까지 내려서는 길은 그야말로 탄탄 대로다.
천주교 공원묘지 좌측을 돌아 나간다.
저 앞쪽에 서해대교가 보인다.
땡겨봤다.
서해대교 맞다.
저앞에 언덕배기에 공세리 성당이 섰다.
꽤 유명한 성당이라는데 아직 가보진 않았다.
오늘도 안가보련다.
공세리에 내려서 오늘 산행을 마감하고 영인지맥 종주도 마감한다.
공세리러 5시 20분쯤 버스를 타고 온양에 나왔고 , 온양서 성환가는 240번 버스를 타곤 이곳서 내렸다.
여긴 어르목고개전 버스정류장 이다.
집에오니 오늘 메뉴는 쫄면 이다.
배고픈 참에 오랜만에 쫄면 참 맛있게 먹었다.
막걸리 안주로 두부김치도 별도로 준비가 되있다.
막걸리 다운 막걸리도 션하게 한잔 했다.
영인지맥 전구간 이다.
이건 발해 지도로 본거다.
영인지맥을 마치며........
새해 연휴를 이용하여 영인지맥을 마쳤다.
길이는 약 40km 남짓 되나보다.
사실 영인지맥의 산들은 대부분 올라본 산들이다.
영인산 같은 경우는 이번이 다섯번째다.
어쨌든 많이 망가졌더라.
천안시내쪽은 아예 없어졌다해도 과언이 아닐것이고 , 시내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아있는 노태산도 내보긴 얼마 못갈거 같았다.
온양쪽도 사정이 그다지 좋진 못했다.
여기저기서 많이 파헤쳐 지고 있었다.
온양쪽 산들을 가보면 참으로 등로관리를 잘해논거 같다.
이정표도 잘해놓고 , 등산로 개발도 잘되있고.............
난 그런데 왜 이런것들이 가증스럽게 보일까?
앞에서만 암만 잘해놓으면 뭘하나 싶다.
뒷구녁에선 저리 파먹고 있는걸.
오늘만 봐도 영인산도 파먹고 , 고용산도 파먹고 또 입암산도 파먹고 있었다.
모르겠다.
어쨌든 파먹을만 하니께 파먹는 거겠지.............
2009년 영인지맥과 함께한 첫산행.
무사히 완주할수 있게 해주신 산신령님께 감사를 드리고
올한해 동안도 안전하고 무탈한 산행이 될수 있게 살펴달라 다시한번 간청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