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거나 캐는산행

걱정봉에 버섯따러...........

산살사 2008. 9. 15. 23:29

언      제?   2008년 9월 13일 흙날

누  구 랑?   나혼저

어      딜?   내고향집-안산-사발봉-걱정봉-배티-걱정봉-삼마골-도랑골-내고향집

도상거리?   8.4km

소요시간?   5시간 3분

 

오늘부터 추석 연휴의 시작이다.

아침일찍 고향집에 내려가선 ,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메곤 산으로 향한다.

오늘은 버섯산행을 겸해 걱정봉의 면면을 돌아볼 참이다.

내게 있어 걱정봉은 이땅의 어느산보다 각별한 산이다.

  

동쪽편서 본 오늘 산행의 발자취.

 

요건 서쪽서 본거.

 

요건 남쪽서 본거.

 

요건 북쪽거.............

 

산행 들머리다.

진분홍색의 물봉선들이 요란한 환영식을 해준다.

우린 여길 발음되는 대로 숫골이라 부르는데 숫골인지 숯골인지 그도아니면 수골인지 정확한 표기는 알수가 없다. 

다만 한자로는 水谷이라 표기하기도 하더만 아마도 마땅히 표현할 한자가 없어서 저리 발음되는 한자를 끌어다 붙인거 같다.

 

산에 발을 들이자마자 영지버섯 몇개가 눈에 띄는데 상태가 영 션찮다.

 

안산 정상이다.

내고향집 서편에 솟아 내가 자라면서 항시 눈을 마춰온 산이다.

아마도 내가 나고 자란 모습에 대해 이산만큼 잘아는 산도 없을거다.

어디 나뿐이랴...........

내 아버님의 일평생도 또 내조상님들의 면면도 전부 지켜봤을 산이다.

아무튼 잘 좀 굽어살펴 다구...........

 

안산서 숨을 고르고 잠시 날등을 따른다.

 

그리곤 바로 사면으로 내려 선다.

오늘 산행의 목적중에 하나가 버섯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오늘도 성과가 아예 없다.

그저 산구경만 실컷 할 뿐이다.

 

그럭저럭 거닐다보니 사발봉에 다다랐다.

여기서 잠시 휴식을 갖는다.

해발 280m 가량이 찍힌다.

 

걱정봉이 빼꼼히 보인다.

 

오랜만에 또 하나 봤다.

역시나 상태가 션찮다.

 

그렇게 성과도 없이 사면만 열심히 탄다.

여기로 내려서면 대리골 이다.

실제로는 경사가 엄청 심한곳인데 사진상으론 잘 표현이 안된다.

경사가 얼마나 급한지 여기서 돌하나 굴리면 그돌이 기정이네 집앞에 가서야 멈출거 같은데...........

 

걱정봉 정상 이다.

올해 여기가 세번짼가 보다.

내 어릴적엔 그저 오늘의 나처럼 버섯이나 따려는 사람들이 가끔 들러가던 산일 뿐이었는데 , 요샌 산 좀 탄다 하는 사람들은 꼭 거쳐가야만 하는 필수 코스가 되어 버렸다.

 

정상에 햇볕이 따가워 잠시 숲에 들어 휴식을 갖자니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지천이다.

보나마나 정맥꾼들의 짓일 게다.

그저 배낭만 짊어�다고 다 산꾼이간디?

담엔 맘먹고 쓰레기 봉투 들고 한번 더 찾어야 되겄다.

왠지 뒷맛이 씁쓸험세.......

 

걱정봉 서쪽 사면을 잠시 타본다.

이곳서 쭉 내려가면 배틸꺼다.

 

걱정봉 정상 바로밑에 위치한 묘다.

금초도 말끔하게 돼 있다.

후손들이 꽤나 힘들겠다.

 

걱정봉 최고의 전망대를 그냥 지나칠수야 없지...........

더구나 오늘은 전형적인 가을날씨라 전에 볼수없던 곳도 조망이 많이 된다.

역시나 기본사양인 봉수산과 천방산 그리고 금북정맥의 능선들이 눈에 들오고...........

 

오늘처럼 날좋은 날에만 옵션으로 보여지는 광덕산의 모습이다.

이곳서 저곳이 뵌다면 분명 저곳서도 이곳이 뵐텐데.........

아직 저곳서 이곳이 뵌적은 없다.

날좋을때 다시한번 올라 보리라.

 

저앞에 보이는 마을은 검단리 불당골이고...........

그 뒷산이 태화산천자봉과 무성지맥의 능선들이다.

이 근방선 꽤나 웅장한 산줄기다.

 

이 나무 뒤로 보이는 산은 금계산 이고............

 

다시 정맥길로 복귀했다.

저기서 표지기가 달려있는 우로가면 오지재로 내려서게 된다.

왼편은 배티로 떨어지는 길이고...........

 

이 능선을 따라 본격적으로 배티를 향해 간다.

 

잔대꽃이 이뻐서 한번 찍어봤더니 카메라가 영 따라주질 못하네..........

 

또다시 사면을 탄다.

걱정봉 서쪽 사면은 동편에 비해 상다히 험하다.

 

왠구멍?

 

저 스틱하나가 다 들어간다.

사면 한가운데 평지가 나타나더니 저런 구멍이 뵌다.

뭣하는 구멍인지 모르겠다.

 

여지껏 걱정봉의 동편 사면과 봐왔지 서편 사면은 아마도 첨이지 싶다.

이쪽은 꽤나 험하다.

 

동편 사면에 비해 바위도 많고 경사가 훨씬 급하다.

 

요거 이후로 더이상 못봤다.

 

성과도 없이 힘만들어 더이상 사면은 안타기로 했다.

그냥 배티 구경이나 갈란다.

하여 이런 능선만 따라 열심히 내려 간다.

 

순흥안씨 집안의 묘손데 이조참의란 벼슬을 지내신 분이다. 

통덕랑은 뭐지?

 

석물도 제법 갖췄다.

 

순흥안씨 묘역이 죽 이어지고 그 능선 끝으로 조그만 마을이 뵌다.

저기가 배틸게다.

 

여기 둘레석을 갖춘 제법 규모가 있어보이는 묘지가 보여 또 유심히 본다.

 

금녕김씨 집안의 묘손데 이산을 배티산이라 하고 이 묘소가 있는 곳을 진둥날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비석의 네면에 글자가 빼곡한데 쭉 건너띄고 맨 끝을보니 후손중에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배출됐고 , 국전심사위원도 배출되신 모양이다.

아무래도 걱정봉의 기운이 모두 이쪽 서쪽으로만 내려선 모양이다.

걱정봉의 동편쪽 내고향 인근에선 면서기하나 나왔단 얘길 못들어 봤는데.........

아무튼 돌아와서 검색을 해봐도 이쪽 걱정봉의 서편쪽에서 인물이 여럿 배출된거 같고 또 역사속 인물들의 묘소도 많이 검색이 된다.

 

여기가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 배티마을 이다.

사실 나도 이 마을은 첨이다.

첨 찾는 마을을 진입로가 아닌 산을 넘어서 오게 됐네......

보다시피 내고향 마을과 별반 다를거 없는 시골 촌구석 이다.

해발 고도는 채 100m가 안 찍힌다.

그러니 내고향 마을에 비해 지대가 상당히 낮다 할수 있고  , 결국은 걱정봉의 서편쪽이 동편보다 많이 낮다는 얘기다.

 

빨래터네.

ㅎㅎ 빨래터 오랜만에 본다.

 

저기 보이는 산줄기가 금북정맥 능선이다.

저 능선을 또 이쪽에서 보게 될 줄이야..........

저기로 넘어서면 아마도 배티네미쯤이 아닐까 싶다.

 

이티2리 배티마을 회관에 다다랐다.

마을 회관을 봤으니 이젠 또 넘어 갈련다.

 

가는길은 저쪽으로 넘어가려 한다.

저기뵈는 산줄기도 금북정맥 능선이다.

아마도 저길 그대로 넘어서면 명곡리쯤으로 예상이 된다.

 

이 골짜기로도 마을이 한참을 이어진다.

이곳 배티도 꽤나 깊은 동네다.

 

가을 하늘엔 새털구름이 산능선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날 참 좋다.

 

꽤나 깊다.

한참을 들어 간다.

 

쇠또왕팅이 집이다.

나도 오빠시나 땡끼까진 여러방 쏘여봤는데 저 쇠또왕팅이 한텐 쏘여 본적이 없다.

들어본봐론 꽤나 호되다데........

맘같아선 돌맹이를 냅다 던지고 잽싸게 도망가고 싶지만 멀지않은 곳에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어 참는다.

엄한 애들 잡을까봐..........

 

고랑이 꽤 깊다.

때문에 수량도 풍부하고 또 상당히 맑다.

 

이렇게 깊은곳에 교회 시설물이 들어섰다.

사실 난 절이 산속에 있는것도 그다지 탐탁치 않은데 , 요즘엔 설상가상으로 이 교회 시설들도 자꾸만 산속으로 접어든다. 

또 왠만큼 경치가 좋다 싶은곳엔 여지없이 전원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다.

다들 경쟁적으로 산으로 산으로들 몰려들고 있다.

허긴 누굴 탓혀?

나도 여건만 된다면 산에서 살고 싶은 놈인걸..........

먼저 맡는놈이 임자여.....

 

물이 풍부하고 맑으니께 고기도 많다.

동네 꼬마가 놨는지 저리 어항이 설치돼 있다.

사진상엔 안보이는데 저기 중태미가 꽉 찼다.

그거 지져먹으면 맛있겄네.............

 

여기도 있는데 여긴 한마리도 안들었다.

 

이제 마을은 완전히 벗어난듯 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치고 오를일만 남았다.

 

누군가 금초를 하려 길을 내논 덕에 참으로 편하게 간다.

 

저산을 올라야 되는데 저게 걱정봉인지 아니면 그 언저리의 어느 봉우린지 알길이 없다.

 

한참을 올라서다 뒤를 돌아보니 저멀리 산세가 심상찮은 산줄기 하나가 눈에 뵌다.

저산이 뭔 산이지?

갑자기 궁금증이 밀려 온다.

 

오름길은 절대로 사면을 타지 않는다.

기운도 없지만 개뿔도 없는걸 굳이어 탈 이유가 없다.

 

금북정맥 능선상에 복귀했다.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아마도 명곡릴 거다. 

 

절리가면 지난번 내려섰던 서낭댕이로 가는 길이다.

 

다시 걱정봉에 올라섰다.

걱정봉아!

이렇게 하룻만에 두번을 만날때도 있구나.

네가 가진 기운을 서쪽으로만 내려보내지 말고 나한테도 좀 주면 안되겄니?

어디 우리가 보통 사이냐?

 

다시 전망대다.

다시와 보니 저기 뵈는산이 도고산 이다.(빨간색 화살표)

 

저 산줄기는 아까 배티서 오름길에 본 그 산줄기다.

저 산줄기들이 도고산과 연결된 산줄기들 이었구나..........

돌아와 검색해보니 저쯤에 덕봉산 , 관모산 , 안락산 , 토성산 , 금오산 , 용굴봉등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기달려라.

니들한테도 곧 가마.

 

얼레려?

유심히 보다보니 또 낮익은 산하나가 눈에 뵌다.

영인산 이다.(빨간색 화살표)

그럼 영인산 좌측으로 희미한 쌍봉이  아마도 입암산 일거다.

입암산 바로뒤가 아산만 일거고.........

예전에 아버지께서 동대말꼭대기서 보이는 바다가 아산만이라고 하시더니 그말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이제서야 확인 했다.

 

하산길은 삼마골로 잡았다.

광산에 공사했다는것도 볼겸해서..........

이냥반은 왜 이리로 내려 서셨을꼬?

알고 내려선겨 아니면 길을 잃고 헤멘겨?

 

얼레?

내 이 냥반덜 산행기는 봤는데 이리로 내려섰단 얘긴 없었는데.........

낙오자가 있었나?

 

벌목지대에 이르니 동쪽 조망이 완전히 터진다.

금계산이 완전한 모습을 보여 준다.

 

금계산과 법화산의 중간지역에 보이는 저 높은 지대의 마을이 아마도 세동 어디쯤 될거다.

참 높은 동네다.

그나저나 저 세동 뒷편으로 돌아가는 산줄기도 보통 웅장한게 아닌데 저기도 아직 밟아보지 못했다.

 

요밑에 검은 차양막이 도랑골 이다.

그 뒷편 산줄기가 동대말이고 그 너머 부엉산서 내려오는 산줄기에 내조상님들이 가을볕을 즐기고 계시다.

제일위에 입향조 이신 내게로 11대조 할아버님께서 나를 보고계시고 , 그 바로밑에서 11대조 할머니께서 그리고 그밑에서 8대조 할머니께서

그렇게 나를 보고 계신다.

이 후손 노는게 귀엽쥬?

잘 좀 보살펴 주셔유..........

 

하여튼 오늘 날씨 진짜 죽인다.

산에 들어 오늘처럼 청명한 날도 만나기 결코 쉽지 않을거다.

암튼 조망이 끝내준다.

광덕산과 광덕단맥의 산줄기가 너무도 선명하게 보인다.

이 앞에 부엉산도 아주 또렷히 보인다.

 

다시한번 태화산천자봉과 무성지맥의 능선들 그리고 능선 중턱까지 치고 올라서 형성된 불당골 마을을 굽어 본다.

 

벌목하면서 냈을법한 임도를 따라 간다.

 

정확친 않지만 아무래도 이게 야관문 인거 같은데...........

비수리라고도 한다는거........

한번 찾아봐야 되겠다.

 

이분들도 유명하신 분들인데........

이분들도 길을 잃었나?

아님 일부러 일루 내려선건가?

이분들 산행기도 찾아봐야 되겄네...........

 

광산에 내려 섰다.

광산서 걱정봉을 올려다 본다.

정상 바로밑가지 저리 덩쿨지대가 형성돼 있다.

모르긴해도 저위에 다래가 엄청 많을거 같은데... 

 

이곳은 예전에 금광이 있던 자리다.

요 잔디밭 밑에 하나하고 그 아랫쪽에 광구가 하나씩 있었다.

일제때 처음 금을 캐기 시작했다 하고 내 어릴적에 동네 어른들은 거의 이곳서 일을 했었다.

물론 내 아버지도 마찬가지 였고..........

그러다가 한참동안을 폐광 상태로 있었는데 얼핏 듣기로 광산 사장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서 그만뒀다는 얘길 들은거 같다.

그리곤 내가 중학교 다닐대 다시 가동이 됐는데 그다지 길지않은 기간이었던거 같다.

그리곤 오늘날까지 폐광으로 남았다.

 

뻣처럼 생겼는데 뭔 열매냐?

 

예전에 광구였던 자리에 저리 성이 생겼다.

 

이건 또 뭔 열매냐?

 

이게 광산 진입로다.

예전에 경운기 끌고 나무하러 가끔씩 찾곤 했었다. 

 

이길도 한참을 내려가야 된다.

 

다내려와 북쪽의 골짜기를 올려다 본다.

우린 여길 배티네미라 부른다.

여기서 네미란 '~의 너머'란 뜻으로 쓰였다.

배티의 너머란 뜻으로 배티네미라 불린거다. 

실제로 저기로 넘어가면 배티가 나온다.

이런 관점에서 난 머그네미란 지명의 유래를 찾아보고자 한다.

공주시청 홈피엔 머그네미의 지명을 오동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옛날엔 오동나무를 머귀나무라 했고 , 머귀나무의 음이 변하여 머그네미가 됐다는 설명이다.

난 아무래도 아닌거 같다.

우리동네 어디에 오동나무가 많대는 건지 납득할수가 없다.

억지로 꾀어 맞춘 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하여 전국에 ~네미가 붙은 지명을 면밀히 찾다보니 한가지 공통점을 찾을수가 있었다.

주로 고개에 붙여진 지명이거나 혹은 고개너머에 붙여진 지명이 대부분 이었다.

무네미고개 라던지 아니면 귀네미 마을이라던지 또는 곰네미 라던지 등등등...........

그러니 저 너머란 뜻과 일맥상통 하는거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설명이 되려면 이근방 어딘가에서 머그라는 지명이 있거나 혹은 이와 유사한 지명이라도 찾아야 되는데..........

결국은 못찾겠다.

암튼 저 오동나무는 아닌거 같어..........

참고로 저 강원도 정선 어딘가에도 머그네미란 마을이 있는데 거긴 오동나무가 많아 옛부터 오동골이라 불렸다 한다.

거기에나 맞는 지명이지.........

 

개천네 집터다.

집은 사라지고 집터엔 저리 콘테이너 박스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어릴적부터 동네 어른들이 개천네 개천네 하길래 멋도 모르고 우리도 따라서 개천네 개천네 했더니 나중에 알고보니 그 개천이란 분이 우리 보다도 한참이나 어른 이었다.

이젠 입에 굳어져 고쳐지지가 않는다.

 

으름이다.

일명 조선바나나다.

조금 더 있으면 벌어지겠다.

군것질 거리가 없던 어린시절엔 참 맛있게 먹던 간식거리중 하나였는데 사실 요새 따먹어보면 참 맛대가리 없다.

내 입맛도 그만큼 많이 변한거다.

 

여긴 원모형네 밭이 있던 자린데 밭의 형탠 온데간데 없고 이렇게 나무를 심어놨다.

 

이것땜에 그런가 보다.

이 머릿돌에서 말하는 광물찌꺼기를 우린 복새라 불렀다.

복새는 회색빛이 도는 고운 돌가루였는데 흙장난 하기엔 안성마춤 이었다.

이 복새로 놋그릇을 닦으면 그리 잘 닦이고 광이 잘나곤 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그럴만 했다.

그 복새는 금광에서 돌을 깨면서 나오는 돌가루고 그안에는 청산가리를 비롯해 수많은 중금속 물질이 들어있었다 한다.

우리 촌사람들이 어디 그걸 알간?

그저 잘닦이니 식기도 닦고 수저도 닦고 저범도 닦고 ,아이들은 부드러운 흙에 묻혀 해지는줄 모르고 놀았다.

근데 그게 글쎄 중금속 덩어리 일줄이야.......

금맥을 찾아 들왔던 외지인들이 떠나고 , 그자리에 남은거라곤 이 복새라는 죽음의 흙뿐이었다.

그렇게 마을은 서서히 중금속에 물들어 갔고 마을은 죽음의 마을이 되어버렸다.

주민들은 이유도 모른채 그렇게 죽어갔다.

그 주민들 중에 내 아버지도 계셨다.

물론 과학적 근거는 없단다.

다만 통계적 수치가 말해 준단다.

늦었지만 시에서 이렇게라도 조치를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너무 늦었다.

너무나 많은 희생이 있었다.

 

도랑골 이다.

이젠 세채가 남았다.

창수네랑 천만이형네 그리고 병철네.........

 

광해방지사업단에서 오염여부를 조사하는 곳인가 보다.

아마도 아까 본대로 공사를 해놓고 오염물질이 얼마나 줄었나 비교를 하려는 장손가 보다.

  

도랑골서 내려오면서 머그네미 마을을 바라본다.

 

도랑골쪽도 뒤돌아 본다.

저 마을뒷편의 산줄기가 금북정맥 능선이다.

정맥꾼들이 저쯤서 이쪽을 향해 사진들을 엄청 찍어댄다.

난 거꾸로 여기서 찍는다.

 

기장 참 오랜만에 보네.............

 

저기 다 쓰러져 가는 슬래트집이 내 고향집이다.

 

고향집 앞에서 마을앞쪽을 바라 본다.

구당골 뒷편으로 먼저 내가 이름 붙여준 봉우리들이 나와 눈을 맞춘다.

왼쪽게 끝봉이고 그옆에가 제일봉 이다.

그옆에 보이진 않지만 다음봉이 있다.

저 세봉우리를 합쳐서 삼형제봉이라 명명 한다.

우리 형제들 처럼.......

저 삼형제봉들도 둘째봉만 베일에 가렸구나..........

암튼 어디에 있든 떳떳하면 그만이다.

열심히 살자.

 

산행을 마치고 덕암초등학교에 나왔다.

난 이곳에 무슨 회귀본능이 있는건지 고향에만 오면 여길 들른다.

창한이랑 남순이랑 현이가 나와 있다.

그리고 문암서 은묵이랑 , 금묵이랑 , 정현이도 와있다.

얘들은 참 오랜만에 본다.

근 십년 가까이 된거 같다

일년 후배들도 꽤나 있다.

덕희도 있고 해식이도 있다.

추동에 승걸이 동생 승원이도 있고 , 문암에 재용이도 있다.

그외 애들 두어명이 더 있었는데 이름을 모르겠다.

개들이랑 선후배간에 족구도 한판씩 했다.

물론 졌다.

내기 족구였는데 뗘 먹었다.

암튼 그렇게 추석연휴의 첫날이 저문다.

 

추석 당일날도 여기에 나왔다.

답답해서 나왔다.

 

나중에 나온놈은 그저 신난 모양이다.

 

두놈이 이쁘게 앉아서 그네를 타고 있다.

니덜 만할때가 좋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