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나들이(유관순 열사의 숨결을 느끼다.)
언 제? 2008년 9월 7일 해날
누 구 랑? 내 사랑하는 사람과 내 두살점들과.......
어 딜? 유관순 열사 사우 거쳐 열사의 생가까지...........
일단 영화부터 한편 때린다.
비록 영화긴 하지만 대신기전이 날아갈땐 뭔가 가슴속이 뭉클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여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현실은?
역시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병천 아우내장터서 순대국밥으로 배를 채우고........
이곳에 이른다.
병천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중에서 순국하신 유관순 열사의 사적지다.
안내도를 유심히 본후.........
들어가 본다.
열사께서 학창시절에 너무 일찍 돌아가셔 사실 유물이 거의 남아있질 않단다.
저 앞에 보이는 건물이 추모당이고 저기 애들이 서있는 곳서 좌측엔 열사의 유물관이 있다.
?국소녀유관순열사 초혼묘태안기념비
열사의 동상.
유물관.
열사의 초상.
17세때 옥중에서 돌아가셨 단다.
이 어린분이 이렇게 지켜낸 나란데.........
현실을 보라.
이나라의 지도층에 누가 앉아 있나?
아우내장터의 평화적인 만세운동에 일본놈들이 총질을 해대서 열몇명인가가 죽었단다.
그대 열사께서 분개하여 일본놈 순사새끼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단다.
그걸 형상화 한 모형이다.
요즘 일부 언론의 관점에선 저걸보고 과격 폭력시위라 써대겠지?
아우내 장터의 만세운동을 형상화한 모형 이다.
저때도 역시나 일반 시민들이 만세운동의 주축이었다.
감옥에서 독립투사들을 이송할때 저런걸 씌워서 이동을 시켰단다.
매봉 약수터다.
덥다.
물한잔 먹고 간다.
여기에 오기전에 열사의 추모당서 열사의 영정앞에서 묵념을 드렸다.
그리곤 사죄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지켜낸 나란데 후손들이 변변치 못했다고..........
추모당은 촬영금지 구역 이다.
오늘도 역시나 말을 잘 듣는다
찍지 말래면 안 찍는다.
추모당에 모셔진 영정은 얼마전 다시 그린 거란다.
이전 영정은 친일의혹이 있는 화가가 그렸다 하여 변경을 했단다.
잘했다.
열사의 동상밑에서 잠시 쉬고.......
여긴 열사의 사우에서 5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생가다.
생가의 모습 이다.
이집은 197?년도에 정부에서 가족에게 새로 지어준 집이라는데 지금은 비었단다.
197?년도면 관동군 장교출신이 대통령을 하던 시절이네.........
관동군 장교 출신이 애국 열사의 가족께 지어준 집이라?
글쎄다......
이 묘한 기분은 뭐지?
열사께서 다니시던 교회 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