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맥 따라가기

금북정맥 내고향 구간(각흘고개서 서낭댕이까지)

산살사 2008. 8. 24. 20:30

언      제?   2008년 8월 23일 흙날

누  구 랑?   나혼저

어      딜?  각흘고개-봉수산-천방산-오지재-걱정봉-서낭댕이-추동

도상거리?   15.2km

소요시간?   7시간 16분

 

오늘은 예정대로 각흘고개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밟아보려 한다.

각흘고개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크게 금북정맥과 그금북정맥서 분기된 봉수단맥으로 나눌수 있는데 내고향 덕곡리 마을은 그중에서도 금북정맥 원줄기가 마을의 북쪽과 서쪽을 감싸고 금북정맥서 분기된 부엉산 줄기가 동쪽을 감싸고 도는 형국이라 하겠다.

사실 각흘고개서 차동고개까지는 작년 이맘때쯤 한번 밟아봤기 때문에 오늘은 작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내고향 산천의 모습 하나하나를 눈속에 마음속에 담는데 의미를 둘 계획이고 , 또 하나 중요한 의의는 오늘 내가 걷는 이길이 곧 내 아버지께서 평생 걸어오신 그 길이기에 내 아버지의 체취와 숨결을 느끼며 걷고자 한다.

다만 아버지께선 먹고 살기위해 이길을 걸었고 , 난 취미생활로 걷는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남쪽방향서 본 오늘 걸어온 발자취.

 

이건 북쪽서 본거.

 

여긴 각흘고개다.

올해 여기를 산행 기점으로 삼은게 오늘로서 세번째다.

광덕단맥 산행때 한번하고 , 법화단맥 산행때 한번 그리고 오늘.

조앞에 이정표에 봉수산 정상까지 4km라 분명히 표기 돼있다.

 

각흘고개를 떠나 잠시후 나타나는 묘지 지대에서 북쪽의 온양쪽을 바라 본다.

조 앞에가 성골이고 바로앞에 금계령 주유소가 보인다.

이 금계령 주유소 사장님에 대해 한마디 해야 되겠다.

근래 저 주유소 사장님께서 지나는 정맥꾼들에게 각흘고개는 잘못된 지명이고 금계령이 맞는 지명이라 말씀 하신다는 산행기를 몇편 접했기에 내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각흘고개란 지명은 조선조 신경준님의 산경표에도 "각흘치"라 표기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 이 근방의 원주민들도 죄다 그리 알고 부르는 지명이다.

또한 어느 지도를 보더라도 금계령이라 표기된 경우는 보질 못했으므로 더이상 이곳을 지나는 정맥꾼들에게 혼동을 주는 행위는 삼가해 주셨으면 한다.

지명이란 그리 쉽사리 만들어 지는게 아닌것을.........

 

날씨가 흐린탓에 숲에 들어서자 마자 사방은 어둠속에 잠기고.......

 

어둠속에 잘 보이진 않지만 저만큼 앞쪽에 왠 움막 한채가 있다.

작년에 이곳을 지날때도 있더니 뭣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용기를 내서 가보려 몇발짝 내딛다 다시 돌아 나왔다.

왠지 무섭다.

아마도 세상을 등진 사람이거나 아니면 도를 닦는 사람이 기거하는 곳이 아닌가 한다.

 

능선상에 올라섰다.

 

이후론 이런 날등을 내내 따른다.

 

저 구름속에 숨은산이 아마도 천방산 일게다.

 

적송 죽인다.

 

묘하게 생긴 나무도 지나고.........

 

아무것도 안 보이나?

여름이라 나뭇잎땜에 잘 보이진 않지만 나뭇잎 사이로 겨우살이가 얼핏 보인다.

 

이 나무다.

이 나무에 겨우살이가 꽤나 많다.

 

길상사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여긴 봉수산 전위봉 이다.

예산군서 금북정맥 등산로를 정비중이라더니 작년에 볼수 없던 이정표가 섰다.

헌데 이 이정표에 두가지 오류가 보인다.

일단 이름.

각홀고개가 아니라 각흘고개가 맞다.

그리고 거리표시도 잘못됐다.

1km는 어림도 없다.

아까 본대로 아산시에서 각흘고개에 설치한 이정표엔 4km라 표기돼 있고 , gps 실측거리도 3.6km가 나온다.

 

보아하니 길상사 1.05km를 베껴쓰다보니 그리된거 같다.

 

저리가면 봉수단맥 길이다.

 

저리가면 금북정맥 천방산 방향이고.......

 

봉수산 정상 이다.

여기 이정표는 한술 더뜬다.

극정봉이 0.6km 란다.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gps로 실측해보니 7.2km가 나온다.

 

봉수산 정상의 모습이다.

봉수산은 산경표상에 송악산이라 명기돼 있다.

이곳서 천안서 오셨다는 산객 한분을 만나 한참동안 대화를 나눈다.

대화가 잠시 무르익다 보니 어째 얘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저분 말씀이 등산도 어느정도 경지에 이르게 되면 산신령님을 만날수 있단다.

실제 본인도 두번이나 산신령님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눠봤고 , 요샌 일부러 만나야겠다 맘먹고 다니니 오히려 안나타나신 댄다.

믿어야되나 말어야 되나.........

아무튼 죄송하게도 말씀도중 돌아나올수 밖에 없었다.

 

자 이제 천방산으로 향해 가자.

 

조금 가다보니 탑곡리가 내려다 보인다.

탑곡리 중에서도 탑산 마을이다.

이곳은 이번구간중 전망이 터지는 몇안되는 곳중 한곳이다.

 

이런 돌댕이도 지나고.........

 

이렇게 멋진 숲길을 걷는다.

숲길이 참 예술 수준이다.

 

여기도 전혀 뒤질게 없다.

 

작년엔 없던 이런 벤취도 군데군데 설치돼 있다.

하여튼 예산군이 참 잘한다.

 

여긴 곧 목계단을 설치할건가 보다.

 

하여튼 이구간 숲길 참 좋다.

 

봉수산과 천방산의 중간쯤 되는 위치쯤인거 같다.

 

올핸 역시나 작년에 비해 영지버섯이 많지가 않다.

아마도 가물어서 그런가 보다.

작년에 이 구간을 지나칠땐 천방산 이후론 배낭에 넣을수가 없어 따고 싶어도 못땄었는데......

 

이렇게 봉우리를 우회하기도 한다.

 

능선 우측으로 보이는 마을인데 아마도 저기가 예산쪽 단지동 마을이 아닐런지.........

 

여기도 적송이 죽인다.

 

이 열매가 뭘까?

첨보는 것이긴 한데 이게 혹시 구지뽕나무 열맨가?

 

잎사귀는 이렇게 생겼다.

 

요쯤에 서있는 이정표를 찍은 사진이 날러갔다.

참으로 중요한 사진이었는데......

암튼 여기에 서있는 이정표에 좌측은 탑신리 , 우측은 임도 , 직진은 천방산 그리고 내가 걸어온길은 봉수산이라 표기하고 있다.

그 이정표의 탑신리가 가리키는 곳이 바로 이길이다.

반대편은 단지동으로 내려서는 길이고.........

다좋다.

근데 탑신리가 어딘고?

이 근방에 탑신리란 동네도 있나?

아마도 탑곡리를 잘못 쓴거 같다.

아니면 탑산이라 쓰려던것일수도 있고........

이 이정표를 보곤 잠시 한심해 진다.

지도를 펴놓고 단  한번만 쳐다봤어도 이런 실수는 없었을텐데..........

  

여기가 단지동 내려가는 길이다.

이정표상엔 임도 방향.

 

좀 가다보니 이 이정표가 나온다.

이 이정표를 보곤 또 한심함에 할말을 잃는다.

아깐 천방산이 1.7km 남았다더니 그동안 온 거리가 얼만데 여긴 또 거리가 2.4km로 늘었다.

봉수산서 천방산간 합산거리도 아깐 3.6km 였는데 , 여긴 또 5.4km다.

이걸 세우면서 더하기만 한번 해봤어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을텐데.........

암튼 내 GPS로 실측해보니 3.6km가 맞는거 같다.

그러니 아까게 맞고 이게 틀린 거다.

 

좀 더 가니 이 플랭카드가 나온다.

예산군에서 하는 사업이 맞네.

암튼 좋은일 하는건 맞고 , 나도 산꾼의 한사람으로 고맙기 이를데 없다.

헌데 아주 쬐금만 더 신경써서 해주시지.......

 

아이구......

잘해 놓으셨네.......

암튼 고생 들 마뉴......

 

여기도 목계단 설치할 곳인듯 하고......

 

천방산 직전의 이정표다.

차동고개쪽서 오는 정맥꾼들이 이곳서 길을 잃고 헤메는 경우가 잦은 모양이더만 이젠 이 이정표가 있으니 길찾기가 한결 수월해 지겠다.

 

천방산 정상 근방의 소나무는 이렇게 수려한 자태를 뽐내고........

 

천방산 정상 이다.

벤취도 생기고 이정표도 생겼다.

예산군 덕분에 우리동네 좋아진다.

 

천방산 정상의 이정푠데 저 삼흥수양관이 뭣하는 데지?

방향상으론 탑곡리에 있는 시설인가 본데.......

 

이 천방산 정상서 또한번 옷을 홀라당 벗고 거풍을 즐긴다.

이 사진상의 스틱이 꼭 다섯쌍 째다.

그동안 싼거만 썼더니 쉽게 고장 나는거 같아 이번엔 안싼걸로 장만해 봤다.

암튼 스틱아!

우리 같이 금수강산 산줄기 구석구석 열심히 헤집고 댕겨보자.

 

자 이제 본격적으로 덕곡리를 향해 가보자.

 

요 표시기가 등로 정비용 지시선가 보다.

그러니까 여기 173번 구역에 평상을 설치하란 뜻이다.

걱정봉에 이르기까지 이런 표시기가 군데군데 달렸다.

 

여긴 목계단을 설치 할곳.

 

영지버섯도 가끔가다 뵈고......

 

이렇게 바위 위에서 어렵게 자라는 나무도 지난다.

 

천방산서 고도를 좀 낮췄다 싶은 곳에 이르니 이 이정표가 섰다.

그리곤 은근슬쩍 열이 받는다.

먹곡리?

먹곡리가 워디여?

혹시 내고향 덕곡리를 저따구로 쓴거여?

도저히 못참겠어서 아까 찍어둔 플랭카드 사진을 보고 전화를 건다.

안 받는다.

생각해보니 오늘이 휴일 이다.

저 이정표는 일단 글자도 틀렸지만 서있는 위치도 잘못 됐다.

저 이정표대로 먹곡리 방향으로 가면 먹곡리도 아니고 덕곡리도 아니다.

바로 탑곡리 소릿절이 나온다. 

그러니까 아예 근본적으로 틀린 이정표인 거다.

암튼 기냥 가자.

그리고 월욜날 보자.

 

여기 의미있는 곳에 이른다.

예전에 없던 벤취가 두개나 섰다.

이건 참 맘에 들게 잘해놨네.......

여기부터가 덕곡리 땅이다.

저 왼편의 벤취 뒤서 부엉산 줄기가 분기 한다.

그렇게 분기된 부엉산 줄기는 원서밥골 , 모세골 , 강당 , 대장터골 , 집너머 , 가찬지골과 당골 뒤를 돌아 추동 덕곡리 입구께 덕곡천과 유구천의 합수지점에서 맥을 다한다.

그러니 저 부엉산 줄기는 덕곡리 동쪽을 싸고 도는 산줄기 인거고 , 굳이어 이름을 붙이자면 부엉여맥이 되겠네........

 

부엉산 얘기가 나왔으니 또하나 짚고 넘어가야 될게 하나 있다.

금북정맥 정맥꾼들 대부분이 윗사진의 봉우리를 부엉산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건 아닌거 같다.

내가 어릴적부터 알고 있던 부엉산은 이게 아니다.

 

이 개념도는 금북정맥 정맥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진혁진님께서 제작하신 개념도다.

보다시피 이개념도도 부엉산 줄기가 분기하는 윗사진의 봉우리를 부엉산이라 표기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부엉산은 개념도에 표기한 바와같이 저 봉우리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덕곡리와 탑곡리를 가르는 산줄기상에 위치하고 있다.

 

위성사진으로도 한번 보자.

 

어떤게 정확한건진 사실 나도 장담을 못하겠다.

다만 이근방 원주민들은 예전부터 나처럼 알고 있다.

언제고 확인해서 잘못됐으면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요기로 가면 남청문날 꼭대기도 지나고 큰고개도 지나고 곧 해발 360m의 부엉산에 오르게 된다.

예전에 부엉산엔 닝이(능이)버섯이 꽤 나곤 했는데 요즘은 어쩔런지.......

 

 

 이후로 내가 밟는땅은 전부 덕곡리 땅이다.

힘차게 가보자.

 

숲사이로 마을이 보이는데 저기가 구당골 이다.

오늘 계획이 저 구당골 뒷편의 뾰족봉을 넘어 서낭댕이로 내려서는 거다.

 

여긴 동대말 꼭대긴데 여기에도 이렇게 이정표가 섰다.

예전에 이곳에 오르면 어렴풋이 서해바다가 보여 애들과 바다를 보겄다고 여까지 올라오곤 했다.

촌놈덜.........

하여튼 맨날 산만 보고 사는 놈들에게 이렇게라도 보는 바다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여기도 목계단 30단 설치가 예정돼 있다.

 

이곳은 작년에 잡목이 바지가랭이를 잡고 늘어지던 곳인데 이렇게 우회로까지 내놨네......

아무튼 예산군에서 해긴 잘해는거 같어.

조금만 더 신경 좀 썼으면 참 좋았을텐데....... 

 

드뎌 보인다.

내고향 덕곡리 마을.

추동도 보이고 , 당골도 보이고 , 머그네미도 보이고 , 도랑골도 보인다. 

우리집 논도 보이고 , 내고향집도 대략 가늠이 가능 하다.

사실 금북정맥 산행기를 찾다보면 요쯤서 찍은 덕곡리 사진을 흔하게 볼수 있다.

덕곡리 마을이 그다지 경치가 좋거나 살기좋아 보이는 동네라 그런건 아니다.

다만 요쯤이 벌목이 돼서 조망이 훤히 터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면에서 아까본 탑산이나 또 잠시후 나오는 걱정봉 중턱쯤서 천방산과 봉수산을 뒤돌아 보는 사진도 같은 경우다.

 

좀 더 땡겨봤다.

저 검은 차양막은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거다.

요밑에 도랑골엔 창수내집도 보이고 , 천만이형네도 보인다.

저멀리 우리집 논을 보니 누군가 두엄을 내놨다.

올핸 누가 농사를 지어먹을 모양이다.

잘됐다.

묵어서 잡풀이 우거진 모습을 보니 볼때마다 맘이 편치 않더니만.......

 

좀 더 간다.

걱정봉이 이제 코앞이다.

 

내동네 산.

증말 좋다.

엇다 내놔도 손색없을 듯..........

 

도랑골쪽을 더 땡겨봤다.

이젠 창한네 밭도 농사를 안짓고 묵히는 구나.........

 

또한번 내겐 의미있는 곳에 다다랐다.

오지재다.

작년에 이곳을 지날때 아버지 생각에 울컥 했던 곳이다.

올해도 별수 없다.

작년에 이곳을 지나고 나서 적어뒀던 글을 옮겨 본다.

 

오지재

 

내고향 덕곡리 도랑골과 예산군 대술면 소거리 마을을 잇는 고갯길이다.

예전에 덕곡리 인근 주민들이 예산장을 보기위해 많이들 넘나들던 고갯길이라 하는데 이젠 완전히 인적이 끊겨 스산하기만 하다.

 

내게도 이 고개를 넘던 기억이 꼭 두번이 있는데 두번 다 아버지랑 같이 넘었었다.

 

한번은 내가 초등학교 일한년때로 기억이 되는데 토종*알로 인해 천안에 있는 병원을 가야할일이 있었다.

하지만 때마침 많은비로 인해 비포장 신작로가 끊기고 천안까지 나갈 방법이 없어 아버지 손을잡고 이 고갯길을 넘어 당거리까지 걸어가선 버스를 타고 병원에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당시 아버지등에 업혔다 걸었다를 반복하며 얼마나 힘겹게 이고개를 넘었던지 지금도 그 아련한 추억이 잊혀지질 않는다.

 

또 한번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기전 아버지를 따라 봉냥캐러 다녔던 때가 잠깐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당거리에서 야간에 이고개를 넘을 일이 있었다.

안그래도 무서운데 자꾸 아버지께서 무서운 얘길 해가며 놀리는 통에 잔뜩 겁에질려 이 고개를 넘던 기억이 난다.

그때 들은 얘기중 하나가 이 고개밑으로 곱돌을 캐던 광산이 있는데 그중 광구가 하나 무너져 인부가 매몰돼 죽었다 한다.

그때 죽은 인부의 혼령이 가끔 나타난대나 어쨌대나..........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도 이곳에 가면 대낮에도 좀 스산한 느낌이 드는건 사실이다.

 

여기에도 이정표가 섰다.

여지껏 보아온 이정표중에 가장 맘에 드는 이정표다.

아니 행정구역상에 정식 명칭인 동네 이름도 잘못 쓰기를 여러차레인 분들이 어찌 저 머그네미란 지명만큼은 틀림없이 또박또박 잘도 썼는지 모를 일이다.

근데 저 소기리라는 지명은 또 잘못된 듯........

아마도 소거리가 맞을 거다.

하여튼 머그네미란 지명을 제대로 쓴 덕분에 아까 잠시 열올렸던게 다 풀렸다.

 

한쪽옆엔 이런 조그만 팻말이 붙었다.

아마도 이 팻말을 참고하여 저 이정표를 세웠을성 싶다.

그러니 저 머그네미란 지명을 저리도 잘 썼지........

이 이정표는 내가 금년 설때 먼저나온놈이랑 같이 와서 걸어 논거다. 

금북정맥 완주 기념으로.........

어쨋거나 이 팻말로 인해 오지재의 이정표가 제대로 표현됐다면 그걸로 됐다.

 

이정표가 섰으니 이 팻말은 그만 떼어 올려다가 그래도 기념삼아 그냥 두기로 했다.

대신 보기좋게 다시 잘 걸고 밑에 내 닉네임은 지웠다.

은근히 쪽팔린거 같아서........

나무에 어설플게 매달려 있던 푯말을 잡아주던 예산금북정맥 종주대 표지기도 옆에 나란히 걸어 뒀다.

 

오지재서 요리로 내려서면 내고향 머그네미 마을 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도랑골.

 

요긴 소거리로 내려서는 길.

 

자 이제 걱정봉으로 올라가 보자.

야 내고향 숲길 참 좋다.

 

이쯤서 걸어온 길을 한번 돌아보고........

저멀리 천방산이 뭉뚝하게 �았다.

 

저게 부엉산 이다.

저 산너머가 탑곡리다.

 

 천방산과 부엉산을 한방에 담아봤다.

 

이제 걱정봉에 거의 다 다다랐다.

 

여기가 걱정봉 정상 이다.

이번 구간중 세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공식 명칭은 극정봉 이다.

이산은 공주시 유구읍 덕곡리와 명곡리 그리고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에 걸쳐있는 산인데 공주쪽이건 예산쪽이건 인근의 모든이들이 이산을 부르는 이름은 걱정봉 이다.

나도 사실 이산을 극정봉이라 부르는걸 안것도 얼마 안된다.

 

이산엔 홍길동과 관련된 설화가 내려오는데 지난번 한남금북정맥 구녀산 산행시 적어뒀던 내용을 옮겨 본다.

 

구녀성의 유래.

유심히 보니 어째 내용이 눈에 익다.

내고향 인근 금계산에 내려오는 홍길동 설화와 거의 흡사하다. 

금계산에 내려오는 홍길동 설화의 내용을 옮겨보자면 이렇다.

 

"예전에 금계산 정상에 홍길동과 그누이 그리고 홍길동의 어머니가 살았다 한다.

홍길동은 물론 홍길동의 누이도 영웅적 기질을 갖고 있어 세상엔 두명의 영웅이 있을수 없다하여 홍길동과 홍길동의 누이가 목숨을 건 내기를 하는데 그 내기인 즉슨 , 홍길동은 쇠신을 신고 소를 몰아 한양을 다녀오는거고 , 홍길동의 누이는 홍길동이 돌아 오기전까지 금계산 정상에 성을 쌓는것이었다 한다.  홍길동의 어머니는 그래도 아들이 더 소중했던지 금계산 서쪽의 봉우리에 올라 아들을 걱정하며 홍길동이 먼저 돌아오기를 빌었다 한다. 홍길동 누이의 성이 거의 완성될 즈음에도 홍길동이 돌아오지 않자 홍길동의 어머니는 쇠솥에 펄펄끓는 팥죽을 끓여 딸에게 먹이니 홍길동의 누이는 뜨거운 팥죽에 입천장이 데어 죽었고 결국은 내기에서 홍길동이 이겼다 한다."

 

어떤가? 흡사하지 않은가?

금계산 인근의 원주민들은 홍길동의 누이가 쌓았다던 성을 홍길동성 이라 부르고 홍길동의 어머니가 아들을 걱정하며 올랐다던 금계산 서쪽의 봉우리를 걱정봉이라 부르는데 그곳이 금북정맥 각흘고개-차동고개 구간의 극정봉이다. 아마도 걱정봉을 한자화 하다보니 극정봉이 된거 같다.

아울러 금계산 남쪽의 무성산에도 홍길동성이 있는데 이곳은 조선왕조실록 연산군편에 홍길동이 성을쌓고 관군에 대항했음이 실제로 기록되어 있다 한다.

 

지난 설때 걸어뒀던 표지긴데 그새 많이 낡었다.

잘 있었니?

 

금년 설때 내가 달아논 걱정봉 푯말은 어디 갔는지 안보인다.

거금들여 달아논 건데.........

암튼 저 푯말 뒤로 진입하면 머그네미 안산 , 용골 또는 숫골로 내려설수 있다.

내 고향집 바로 앞으로 내려설수 있는 거다.

 

근데 난 금북정맥을 따라 이리로 간다.

목표로 했던 구당골 뒷산을 타기 위해 서다.

 

여기서 우로가면 금북정맥 이고 , 좌로 틀어 능선을 타면 구당골과 명곡리를 가르는 산줄기다.

 

여기로 가야 한다.

 

절리가면 금북정맥 길이고.........

이 이후로도 등산로 정비 작업이 계속되는 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암튼 내가 안챙겨도 잘 해줄거라 믿는다.

 

역시나 인적이 드문 게비다.

능선 상태가 말씀이 아니다.

이쯤서 부턴 개척산행이나 다름없다.

비록 내고향 산길이긴 하나 사실 나도 첨 걷는 길이다.

때문에 신경을 바짝 쓰며 간다.

여차하면 명곡리로 떨어질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도 적송 참 멋있다.

 

출출하여 간식을 먹는데 바로앞에 또 영지버섯이 보인다. 

 

이쪽 숲도 은근히 좋다.

하여튼 내고향 최고다.

 

시간이 꽤 됐다.

숲속에 어둠이 찾아들기 시작 한다.

 

망태버섯 두놈이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의 자태를 뽐내고........ 

 

예전에 명곡리 사람들이 구당골 어딘가 고개를 넘어 덕암초등학교로 댕겼다더니 여기가 아닌가 한다.

아마도 이리로 내려서면 구당골이 나올듯.........

 

여기가 머그네미 마을서 구당골쪽을 바라보면 뾰족하게 보이는 봉우리의 정상이다.

막상 와보니 그저 뭉뚝할 뿐이네.........

 

야 숲길 좋다.

여기가 뾰족봉과 뾰족봉의 사이쯤 이다. 

 

다시 두번째 뾰족봉을 향해 오른다.

 

여기가 두번째 뾰족봉 정상 이다.

해발 309m가 찍힌다.

 

드뎌 터졌다.

구당골뒤 뾰족봉서 바라본 내고향 덕곡리 마을 이다.

아깐 저 마을 뒷편 산 어디쯤에서 이쪽을 쳐다봤는데 어느새 정반대편에 서있다.

이쪽서 보는 내고향 마을은 또 색다른 느낌을 준다.

 

요앞에 산이 부엉산서 내려온 산줄기다.

우측으론 아까 산행을 시작했던 각흘고개가 보이고 그 밑에 있는 마을이 문암 이다.

 

각흘고개와 문암마을 땡겨도 보고..........

 

머그네미 마을도 땡겨 보고........ 

저 머그네미 마을 앞쪽을 우린 혼내깔이라 부르는데 공주시청 홈피를 보니 저곳을 홉내골이란 골짜기 개념으로 설명해 놨다.

아닐꺼다.

저곳은 도랑골과 웃말쪽서 내려오는 물이 합수되는 곳이니 내생각엔 아마도 혼내깔이 맞는거 같다.

내깔이란 냇물의 고어로 알고 있다.

 

저긴 당골 마을.

회관도 보이고 , 기평이네도 보이고 , 관식이네도 보인다.

 

천방산과 부엉산도 땡겨 본다.

왼쪽의 뭉뚝한게 천방산 이고 , 오른편쪽에 뾰족한게 부엉산 이다.

부엉산은 이쪽서 보니 또 저렇게 뾰족하게도 보이네.......

 

요 앞에가 구당골인데 공주시청 홈피에 보니 이골짜기와 관련된 설화가 하나 소개돼 있어 옮겨 본다.

 

장자골〔마을〕
내 용 [위치] 구당골의 서쪽 골짜기.

[유래] 장자골에 큰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마을 일도 자기 마음대로 하였다. 돈이나 재물
을 베푸는 데는 인색해서 걸인이나 중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그래서 돈푼이나 있
어서 큰 소리를 치지만 마을에서는 인심을 잃고 있었다. 하루는 허름한 중이 집에
찾아와서 목탁을 치며 시주를 원했는데 사랑방에서 담뱃대를 탁탁 털던 장자는 미
다지 문을 확 열고는 버선발로 뛰어 나와선 중의 바랑을 번쩍 벗기더니 마당에 팽
개치는 것이었다. 마당에는 바랑 속에 들었던 곡식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리고선
돌아서는데 중이 우두커니 서 있다가 말하기를
"조금만 노력하면 만석꾼이 될텐데… 그걸 가르쳐 드리려고 왔는데…"
하고 입맛을 쯧쯧 다시는 것이었다.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이 말을 들은 장자는 그
말이 솔깃해서 "그래요. 허… 참 내가 큰 실수를 했구만, 어디 어떻게 하면 내가
만석꾼이 되겠소." 하고 웃으면서 다가오는 것이었다. 중도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덕곡리 장승터에 있는 바위를 깨서 두 조각으로 만들면 당장 만석꾼이 되겠소이
다." 하고선 앉아 곡식을 쓸어서 바랑에 담더니 총총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중이
돌아가자 장자는 당장에 석수쟁이를 불렀고 그리고선 그들에게 이 밤이 새도록 바
위를 두 조각으로 깨면 보수를 배로 주겠다고 하므로 석수쟁이 몇 사람은 열심히
돌을 깨기 시작하여 새벽까지 두 조각을 만들어 놓았다. 장자는 이제 만석꾼이 되
었다고 기뻐서 석수쟁이에게 돈을 듬뿍 줘서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부
터 집안에 우환이 생기고, 다음 해는 곡식에 병이 생겨서 모두 이삭을 맺지 못했
다. 그런 일이 연거푸 일어나 3년내에 그 장자는 완전히 거지가 되었다. 마을에서
재물이 나가지 못하게 바위가 막고 있어서 그나마 장자로 살았는데, 그 바위를 깨
버리자 재물이 새나가는 바람에 인색한 장자는 거지가 된 것이다.

글쎄다......

내 여지껏 구당골에 장자골이란 골짜기가 있는줄도 몰랐고 이런 설화가 내려오는 줄은 더더욱 몰랐었다.

덕곡리 장승터라 하면 서낭댕이를 가리키는 걸테고 실제로 서낭댕이 앞에 두개의 바위가 있으니  아마도 석수쟁이들이 밤새도록 깨서 두조각을 냈다는 그 바위가 이바위가 아닌가 한다.

어쨌거나 이젠 그곳에다 커다란 두개의 석장승을 세워 재물이 새나가는건 막았으니 앞으로 덕곡리는 부자마을이 되겠네........

암튼 은근히 재맸다.

 

구당골과 당골을 한번 더 땡겨 보고.......

 

자 이제 또 가자.

구당골 뒷산의 뾰족봉이 두갠줄 알았더니 하나가 더 남았다.

총 세개다.

근디 원제 이리 어둬졌니?

 

여기가 세번째 뾰족봉 정상 이다.

여기서 급좌회전을 한다.

 

이제 거의 다왔다.

저 두봉우리가 첫번째 그리고 두번째 뾰족봉 이다.

저멀리 더 뾰족한건 걱정봉 이고..........

 

걱정봉과 오지재쪽 능선을 바라 본다.

금북정맥의 웅장한 꿈틀거림이 볼만 하다.

내고향 산천 참 멋있다.

 

전해오는 설화에 의하면 홍길동이 떠나면서 북쪽하늘이 붉어지면 자기가 살아 있다는 징표로 알라고 했단다.

홍길동은 살아 있다.

 

숲사이로 뵈는 머그네미 마을을 한번 더 쳐다보고.........

 

첫째 , 둘째 뾰족봉은 서서히 어둠속에 잠겨 든다.

 

 

걱정봉도 또한번 쳐다보고.........

 

하산지점에 거의 다다르니 이렇게 잡목이 길을 막는다.

 

요기 하늘색 지붕이 종대네 집이다.

그옆에가 동국이네 집일거고...

 

머그네미 마을과 마지막 눈인사를 한다.

 

정동쪽엔 저리 금계산이 위용을 뽐낸다.

금계산밑에 자리잡은 마을이 추계리2구 추동마을인데 저곳은 고려 무신정권때의 충신 문극겸의 후손들인 남평문씨들의 집성촌 이다.

  

덕곡리 입구의 모습 이다.

 

마을앞에 법화산도 보이고...........

 

요기 어디쯤에 내 고모부의 산소가 있어 인사를 드리고 가려 했더니 잡목이 우거져 도저히 못찾겠다.

당시에 지네의 아귀에 해당하는 좋은 혈처에 모셨다 했었는데........

 

당골을 다시 한번 보는데......

 

저기 용배넨가 아니면 영기넨가는 뭘하길래 저리 저녁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난댜?

여물 쑤남?

 

처음으로 대리골도 보인다.

원종이네 집도 힐끗 보이네.......

보고싶다 .

친구야.........

 

오늘 산행의 종점 서낭댕이다.

아마도 이곳은 예전에 성황당터 였을거다.

그리고 내가 서있는 이쯤이 예전엔 행여(상여)집 자리였다. 

 

서낭댕이를 뒤로한채 차를 회수 하러 간다. 

 

창경이 아저씨넨 젖소가 많이 늘었네.......

 

개울가에 오리 한마리는 저리 어둠속에서 청승을 떨고........

 

농가 담벼락엔 꽃이 이쁘게 피었다.

 

지방 2급하천 덕곡천.

1급은 뭐고 , 2급은 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물은 똥물 이다.

축사가 참 많다.

 

유구천 상류의 모습 이다.

이물길이 흘러흘러 창말에 이르면 차동고개쪽서 흘러드는 물길을 아우른다.

그리곤 또 흘러흘러 사곡에선 마곡천을 받아 들인다.

또 흘러흘러 세력을 키워선 금강에 몸을 맡긴다.

그 흐름 하나하나를 내눈으로 확인 했다.

 

어둠속에 묻혀가는 덕곡리 표지석........

 

각흘고개의 차를 회수하려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둠속으로 세번째 뾰족봉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허긴 쟤는 한번도 카메라에 담질 못했었네.........

쟤들 뾰족봉들은 아직 무명봉 이다.

그래서 내가 이름을 붙여준다.

두번째 뾰족봉이 제일 높으니 제일봉.

첫번째 뾰족봉은 그다음이니 다음봉.

그리고 쟤는  제일 마지막에 나타났으니 끝봉.

워뗘?

맘에 드남?

안듬 말고.........

내고향집 대문앞에 서면 다음봉은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걱정봉도 어둠속에서 나를 내려보고 있다.

 

근 8시간이 지난후 다시 각흘고개에 돌아왔다.

 

아까 산행을 시작했던 능선 이다.

 

엄마를 모시고 유구로 밥먹으러 나왔다.

먹자보리밥집

삼마골서 살던 개천이 아저씨네 여동생이 하는 식당 이라는데 먼저 한번 먹어보니 꽤나 맛있었다.

 

주메뉴는 이거다.

보리밥에  이것저것 넣고 비벼 먹는거..........

맛있게 잘 먹었다.

 

다시 고향집에 들어왔다.

고향집 스레트 처마 뒤로 가로등 불빛 하나가 참으로 힘겹게 어둠과 싸우고 있다.

기냥 져..........

뭐터러 그리 이길라고 기를 쓰고 그랴........

 

가로등밑서 고샅을 한번 쳐다보곤 또다른 내집을 향해 간다.

언제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 올거다.

 

인근에 밟아본 산줄기 전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