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지맥 세번째(쌍달리서 금강과 유구천의 합수점까지)
언 제? 2008년 8월 3일 해날
누 구 랑? 나혼저
어 딜? 쌍달리-무성산-영천고개-고불산-상서리-채죽산-평목리-금강과 유구천의 합수점-평목리
도상거리? 24.2km(gps)
소요시간? 10시간 49분
비 용? 택시비 16000원(평목리서 쌍달리까지) , 이것저것 2000원
차량 이동경로?: 내집-정안-쌍달리(왕복 62km)
어느덧 오늘이 휴가 마지막 날이다.
이번 휴가는 실컷 산을 찾고자 했었는데 그도 맘껏 된거 같진 않다.
아마도 내몸이 나만의 몸은 아니기 때문이리라.
어찌됐든 이번 휴가는 참으로 바쁘게 지냈다.
무성지맥 마지막 구간은 약 15km 가량의 거리에 약 7시간 가량의 시간이 걸릴걸로 예상을 했다.
때문에 늦어도 저녁 6시 이전이면 산행을 마무리 지을수 있을거란 생각에 잠도 잘만큼 자고 출발도 그만큼 여유있게 했다.
헌데 산은 겪어봐야 안다.
쌍달리를 출발하면서 부터 생각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더니 , 고불산전 산불지역에선 최악의 잡목 지대를 만난다.
한치앞도 구분할수 없는 잡목지대에 갇혀 산초나무에 긁히고 멍가넝쿨에 옷가지를 잡혀가며 정말 힘겹게 그 지역을 벗어나려 애썼다.
그렇게 힘겹게 잡목지역을 벗어나 올라선 능선인데 올라서고 보니 마루금을 잘 못 그렸다.
아까 그 능선이 맞네비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맥이 풀리며 그 자리에 주저 앉는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이심정 모를거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허탈한 맘에 물만 벌컥벌컥 마시다 맘을 추스르곤 다시 가시덤불 속으로 발길을 내딛는다.
그리곤 거기서 그렇게 끝났으면 좋으련만 한 두어번 더 엉뚱한 능선을 마루금으로 잘못 알고 올랐던거 같다.
지금 생각해도 중도 포기치 않은 내 스스로가 대견할 정도다.
암튼 오늘 산행은 그렇게 힘겹게 갔다.
그리곤 참으로 오랜 시간을 갔다.
무성지맥의 끝점 충남 공주시 우성면 평목리 금강과 유구천의 합수지점에 다다르니 이미 날은 저물고 사방은 어둠에 잠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쓸쓸히 어둠속 금강변 뚝방을 걸으며 무성지맥의 완주를 자축한다.
나야!
그동안 고생 했다.
남은 한남정맥도 안전한 산행 , 즐거운 산행 하자.
화이팅!
들머리쪽서 본 오늘 산행의 발자취.
여긴 날머리쪽서 본거.
쌍달리 입구의 장승들.
여기서도 한참을 들어 간다.
쌍달리도 꽤나 깊은 동네다.
쌍달리 마을회관에 차를 세우고 임도를 따라 오르자니 임도옆으로 이런 바위가 보인다.
하마같이 생겼다.
쌍달리를 내려다 본다.
저기 보이는 마을에 차를 세우고 걸어올라 왔다.
마을회관서 능선까지 거리가 3km가 넘는다.
태학산 주차장서 정상까지 거리보다도 머네........
임도끝엔 이런 정체모를 조립식 건물이 지키고 있다.
지난번 먼저 나온놈이랑 내려설때만 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풀이 꽤나 많이 자랐다.
이 근방서 뱀을 두마리나 본다.
으......... 싫다.
먼저번 먼저 나온놈이랑 요 이정표를 지나치곤 얼마안가 발길을 돌렸었다.
능선에 올라서니 한결 산행이 수월하다.
산길도 좋다.
드뎌 거리표시가 된 이정표가 나타났다.
무성산이 2.1km 남았단다.
엎어지면 코 닿겄네......
얼릉가자.
이런 집채만한 바위가 간혹가다 나타난다.
저게 아마 평정저수질껄?
이정표엔 이곳을 봉화대라 표기하고 있다.
성터의 형태나 규모로 보아 법화산의 그것과 흡사하다.
아마도 관망용 성터가 아닐까 싶다.
2년전에 81세의 나이로 1,100산을 등정하셨다는 도한준님의 표지기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무성산 등산로 안내도.
아까 봉화대터가 있던 봉우리를 한치마봉 이라 하는가 보다.
홍길동성이 이젠 1km 남았단다.
무성산의 능선길은 이렇게 호젓하고 좋다.
근데도 사람의 발길은 잦지 않은 모양이다.
등산로가 양호하게 보전되어 있다.
엊그제 갔던 석성산만 해도 등로가 패이고 나무뿌리가 튀어 나온게 다반사 였는데........
한편으론 이게 더 좋다.
이제 홍길동성터가 보인다.
무너져 내려 이젠 그저 돌무더기일 따름이다.
금계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요런곳은 그나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첫번째 헬기장 이다.
무성산 정상을 기점으로 총 네개나 되는 헬기장이 마련돼 있다.
씰데없이......
무성산 정상 바로 직전에서 참으로 묘한 비석 하나를 접한다.
인조대왕이라...............
인조면 그 왕 아녀?
실리외교를 펼치던 개혁군주 광해군을 몰아내고 보위를 찬탈한 왕.
명분만 내세우며 스러져가는 명나라만 숭배하다 병자호란을 자초한 왕.
이나라의 백성들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어 고통만 안겨준 왕.
본인도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무릎꿇고 머리를 조아려 우리역사에 씻을수 없는 치욕을 안겨준 왕.
권력에 눈이멀어 자신의 아들을 독살하고 며느리와 손자까지 죽였던 왕.
그런왕이 인조인걸로 아는데 대왕이라............
내 정확히는 모르나 우리역사에 있어 대왕이란 호칭은 광개토대왕과 세종대왕에게만 붙일수 있는 신성한 호칭인걸로 아는데 인조에게 대왕이라..........
그 직계 후손들껜 무례인줄 모르겠으나 대왕이란 호칭은 글쎄..........
비석을 좀 더 유심히 보자.
인조의 후손을 16세까지 표기하고 있다.
1세에 보니 인평대군이라 새겨져 있다.
대군이란 칭호를 붙인걸 봐서 분명 적손임은 확실하다.
인조의 적손으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알고 있었으나 인평대군은 첨 들어본다.
소현세자는 나중에 아버지 인조에 의해 독살을 당하고(정사는 아님) , 봉림대군은 추후 보위에 올라 북벌을 펼치다 꿈도 펼쳐보기 전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효종이다.
효죵 역시 독살됐다는 설이 많다.
돌아와 검색해 보니 인평대군은 인조의 적삼남 이란다.
그러니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친동생 이다.
2세는 복선군이라 새겨져 있다.
복선군이면 몇해전 드라마 장희빈에서 배우 송용태씨가 맡았던 배역이다.
그러니까 효종의 조카고 숙종의 당숙 이다.
어찌됐든 나중에 역모에 휘말려 집안전체가 몰살을 당한걸로 안다.
당시에 역모에 휘말리면 삼족을 멸한다 들었는데 이렇게 후대를 이어간걸 보니 그래도 왕실의 종친이라 예외는 있었던듯 하다.
3세 이후는 전혀 모르겠다.
근데 이게 왜 여기에 서있을꼬?
인조의 후손이 분명 이곳에 정착을 했다는 얘긴데?
이괄의 난때 인조가 공주 공산성에 한때 피신을 했다더니 그때 이곳에 남았다가 세를 이어갔나?
비석 뒷편에 이비의 설립취지에 대해 기재하고 있는데 내용인 즉슨 이렇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한다라거늘 하물며 후?로 어찌 종조보본에 소홀히 하랴 이에 자손이 뜻을 모아 이돌을 세웁니다."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다.
암튼 산행을 하다보면 참 많은 것을 접하게 되고 그로인해 배우는 것도 참 많다.
무성산 정상석 이다.
금계산과 활인봉의 그것과 똑같다.
저게 공주시 정상석의 표준형 인가 보다.
숲속 인근에 참으로 초라하게 서있다.
정상옆에 이런 통신시설이 있다.
오늘 유일하게 만난 등산객 이다.
대전서 오셨다는데 영천리쪽서 올라오셨단다.
홍길동성 이다.
성벽은 무너지고 무너진 성벽을 주워 이렇게 탑을 쌓았다.
산사면을 따라 이렇게 무너진 성벽들이 나뒹굴고 있다.
무성산성 안내판 이다.
언제 누가 쌓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고 그저 주민들 말에 홍길동이 쌓았다는 설만 있단다.
유독 이 근방에 홍길동과 관련된 설화가 많다.
여기 무성산뿐아니라 금계산에도 , 걱정봉에도 , 법화산에도 , 또 천종산에도.........
근래 실존인물 홍길동을 허균이 소설화 한거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단 얘길 들었다.
저 전라도 어딘가선 홍길동의 고향임을 내세워 생가도 복원했다 들었다.
한편에선 홍길동이 세웠다던 율도국이 일본의 오끼나와란 설도 있고 , 오끼아와에도 홍가왕에 대한 설화가 전해온다 들었다.
또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연산군편에도 홍길동이 무성산에 성을 쌓고 관군과 대항했다는 기록이 있다 들었다.
뭔가 앞뒤가 착착 들어 맞는다.
하여 다른건 모르겠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됐다는 내용만큼은 실제로 그런가 내가 한번 뒤져보고자 한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 홍길동이란 이름으로 검색을 하니 아닌게 아니라 총 10건의 기록이 나온다.
연산군때 충청도 고을에 홍길동이란 이름을 가진 도적이 있었던건 확실히 기록되어 있다.
허나 그게 다다.
더이상은 없다.
다만 홍길동이란 도적을 잡고나서 그를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처벌문제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 대부분 이다.
결론적으로 이 기록만 가지고는 이홍길동이 저홍길동인지도 불분명하고 그 홍길동의 활동무대가 여기라고도 단정지을수도 없다는 거다.
어쨌든 여길 계기로 또 한가지 배우고 간다.
등산로 안내도다.
무성산 등산로의 최대 단점이 내보긴 저 임도다.
임도가 너무 많다.
또 헬기장도 너무 많고...........
아마도 일대의 밤나무밭과 관계가 있는거 같다.
또 다른 헬기장에 이르니 서쪽으로 조망이 약간 터진다.
요앞에 봉우리가 활인봉이고 활인봉 왼쪽 어께너머로 살짝 보이는게 옥녀봉 이다.
우측의 쌍봉은 태화산나팔봉 이고.........
아마도 저뒤에 웅장하게 흘러가는 산줄기가 금북정맥이 될거다.
이런곳은 성의 형태가 꽤나 남아 있다.
이제 정상을 내려서 고불산을 향해 본격적으로 가보자.
숲길 좋다.
무성산에 은근히 바위가 많다.
헬기장이 또 있다.
이 헬기장서도 꽤나 전망이 터진다.
다시 서쪽 조망이다.
활인봉과 옥녀봉이 보이고 요앞에 황토지대가 마곡온천 이다.
온천뒤 잘록한 곳이 물란이 고개고..........
이건 북쪽 조망 이다.
꽤나 멀리 보이긴 하는데 당췌 어디껜지 감이 오질 않는다.
저 멀리 쌍봉이 태화산천자봉 인듯도 하고 광덕산 인듯도 하다.
그앞에 꿈틀대는 산줄기가 금북정맥 인지 무성지맥 인지도 불분명 하고..........
그저 답답할 따름 이다.
태화산나팔봉과 나발봉을 땡겨 봤다.
그러니 요앞에 마을이 마곡사 주차장이 되는 거다.
십승지의 핵심인 곳이다.
오늘로서 십승지를 감싸고 도는 어지간한 산줄기는 죄다 밟아본거 같다.
암튼 결론은 북쪽에서 보면 천연요새라 할만하다.
금북정맥이 잠그고 무성지맥이 또한번 잠궜다.
동으로는 무성지맥이 감쌌고 , 서로는 법화단맥이 감쌌다.
유일하게 열린곳이라면 남쪽이라 하겠지만 이곳마저도 호락호락 하지가 않다.
법화단맥의 끝자락이 새끼를 친 공덕산 줄기가 서쪽을 , 무성산서 분기된 연미단맥과 약산 줄기가 이중 삼중의 울타리를 둘렀다.
저기는 남쪽 조망 이다.
그러니 저기가 공주시내가 되는 거다.
집채만한 바위에 이런 석문도 지난다.
여기 또 있다.
군데군데 서있는 이런 바위들이 무성산의 격을 한층 더 높여 준다.
이제 본격적으로 고불산을 향해 가보자.
한참동안 이런 좋은 날등을 걸었다.
여기가 영천고갤 거다.
마을회관쪽으로 가면 영천리다.
대충산사의 재넘이님 표지기다.
나도 간혹은 저 대충산사 까페에 가서 자료를 얻곤 한다.
이 영지버섯은 꽤나 컸다.
한참을 가니 이런 이정표가 나오는데 뭘 의미하는건지 모르겠다.
가면서 잊을만 하면 한번씩 나온다.
그 표지기를 접하고 부터 이런 수렛길이 나온다.
이 수렛길을 따라야 된다.
반대로 갔다가 또 한동안 고생을 했다.
이런 잘 닦인 수렛길을 한참을 따른다.
이때가 좋았다.
잠시후 이런 수렛길이 끈기면서 산불지역을 접하게 된다.
이런길을............
한치앞도 분간할수 없다.
잡목과 가시넝쿨이 얼굴이고 팔뚝이고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
옷도 잡아끌고 배낭을 잡고 늘어지기도 한다.
잡목너머로 어디쯤인가 내다 보지만 전혀 감을 잡을수가 없다.
암튼 이 산불지역에서 엄청난 고생을 한다.
시간도 엄청 까먹는다.
하늘위선 햇볕을 막아주는 나무가 없으니 머리는 익을것만 같고 땀이 비오듯 한다.
이런곳을 어렵사리 헤쳐 나간다.
그렇게 올라선 능선이 정상적인 마루금이 아니기를 여러차례.......
몸은 자꾸 지쳐가고 의욕은 점점 사라진다.
중도에 포기하고 성곡사를 찾아 내려설까 하는 유혹도 여러차례 뿌리친다.
고생끝에 낙이라고..........
최고의 난코스 산불지역을 뚫고 나오니 보상이라도 하듯 이런 밤나무 단지가 나온다.
고불산은 나도 모르는새 지나친 거다.
이 밤나무 단지는 무성지맥의 마루금을 따라 한참을 이어진다.
저기 연미산도 뵌다.
곰나루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연미산.
공주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연미산.
금강이 훤히 조망되는걸로 잘 알려진 연미산.
내가 학교 댕길때 수없이 비껴가던 연미산.
제비 꼬랑지를 닮아서 연미산 이라 했단다.
지나온 마루금을 돌아 본다.
저 높은 봉우리 어디쯤에 무성산이 있을거고 이사진 우측으로 뻗은 산줄기가 연미단맥이고 , 좌측의 산줄기는 내가 지금 지나쳐온 무성지맥 이다.
여기는 내산리쯤으로 보이고 그뒤로 있는듯 없는듯 흘러가는 산줄기가 연미단맥의 막바지 모습이다.
저 끄트머리에 가서 불끈하고 힘을 줘 맺은게 연미산 이다.
앞으로 가야할 산줄기를 가늠어 본다.
무성지맥도 이젠 막바지에 이르러 고도를 급격히 낮추고 있다.
저 앞으로 연미산과 채죽산이 나란히 서있다.
실상 무성산 이후로 이 두산줄기는 나란히 마주보며 뻗어와 또 나란히 금강에 맥을 묻는다.
다시 한번 뒤를 돌아 본다.
아무래도 저 연미단맥이 자꾸 부르는거 같다.
자기도 한번 찾아 달라고.........
내 한번 깊이 고려를 해보마.
누군가 이렇게 등산로 표시를 해놨다.
연미산이 한층 더 가까워 졌다.
채죽산도.........
무성지맥 마루금은 도로공사 현장에 끊겨 어쩔수 없이 마을로 내려 선다.
무조건 내려서니 복숭아 과수원 이다.
저 앞에가 마루금인데 역시나 과수원이 차지하고 있어 온전히 마루금을 이어갈수가 없다.
하여 마을내 도로를 따른다.
한참을 가다보니 상서리 구판장이 보인다.
저기서 션한 하드로 몸을 좀 식히고........
그 구판장서 급 좌회전을 하여 이길을 따른다.
마루금은 과수원에 내주고 도로에 끊겨 이어 간다는건 도저히 불가능 하다.
연미산은 한층 더 가까워 졌고..........
채죽산도 마찬 가지고.........
이 물줄기가 연미산 줄기와 채죽산 줄기를 가르는 물줄기다.
무성산쯤서 발원하여 영천리와 내산리를 거쳐 금강에 합류 한다.
드뎌 채죽산 밑에 다다랐다.
자 이제 올라가 볼까나........
채죽산 초입에 접어 들었다.
자연성곽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바위가 앞을 막는다.
내 그동안 수많은 마루금 산행을 하면서 터득한게 하나 있다.
어느 산줄기 어느 구간이든 언제든 마지막 봉우리만큼은 그리 호락호락 정상을 내주는 경우를 못봤다.
이 채죽산도 거역할수 없는 하나의 원칙 이다.
해발 10m대에서 시작된 오름길이 170m까지 줄곧 급경사를 이룬다.
열시간 가까이 계속되는 산행에 체력이 바닥날때쯤 해서 극복해야 하는 고도차 150m는 실로 죽을 맛이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숲이 꽤나 어둬졌다.
갑자기 서늘해지고 머리칼이 서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올라온 길을 내려다 봤다.
어둠이 막 밀려들고 있다.
머리칼이 진짜 선다.
여기도 집채만한 바위가 있다.
채죽산도 낮은 산이지만 꽤 괜찮은 산이란 생각이 든다.
드뎌 봉우리에 올라섰다.
근데 삼각점이 없다.
여기가 정상이 아닌거다.
아까 멀리서 본 모습에 의하면 채죽산은 쌍봉이었다.
또다시 내려섰다 다시 올라야 될 모양이다.
역시나 채죽산도 만만한 산은 아니다.
아주 사람의 진을 완전히 빼곤 정상을 허락 한다.
에고 언제 이리 어둬졌데?
무섭네.....
숲 사이로 공주시내가 살짝 보인다.
숲만 벗어나면 아직도 해가 중천 이다.
정상으로 가는길은 이렇게 바위지대를 지나고.......
드뎌 채죽산 정상 이다.
나무가 없으니 여긴 또 대낮 이다.
채죽산의 북쪽 조망.
조앞에 마을이 상서릴꺼고 저멀리 보이는 산줄기가 무성산 언저리쯤 될거다.
요앞에 도로서 좌로가면 우성면이 , 우로가면 공주시내가 나오겠지..........
무성산 줄기를 땡겨 봤다.
이리봐도 그다지 멀게 보이지 않는데 아까 산불지역서 너무 많은 시간을 까먹었다.
서편 하늘에 해가 기울고 있다.
몸을 돌려 다시 숲속에 드니 완전 한밤중 이다.
아직도 숲속을 꽤나 걸어야 금강과 유구천의 합수점이 나올텐데 이거 걱정이다.
내가 겁이 참 많다.
때문에 여지껏 야간산행 이란건 해본적도 없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듯한 기분에 더이상은 못가겠다.
하여 사면을 타고 내려서 마을길로 가기로 했다.
막 숲을 빠져 나오니 동쪽에 연미산이 쳐다본다.
'나한틴 안올껴?' 하는듯 하다.
그리곤 보인다 금강이......
저기가 곰나루다.
이 금강을 보고자 30여km의 산길을 걸어 왔다.
암튼 반갑다.
나중에 금남정맥 완주때 다시한번 보자.
금강변을 따라 이렇게 도로가 나있다.
이도로를 따라 가보기로 했다.
금강의 물빛은 갈수록 검어 진다.
어둠이 급격히 내리 깔리고 있는거다.
평목리를 지나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밑을 통과 한다.
저 다리밑을 지나 조금만 가면 목적지다.
이게 유구천의 물길 이다.
안보이나?
난 보인다.
저 상류쪽서 보던 물길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세가 많이 커졌다.
이건 금강의 물줄기다.
저 앞쪽에서 유구천을 받아 들인다.
안보이나?
난 보인다.
둘이 사이좋게 만나서 힘차게 흘러가고 있다.
애초에는 이곳에 다다라 금강의 물로 세수 한번 하고 , 유구천의 물로 또한번 세수를 하려 했더니 날이 저물어 물가에 까진 가보지 못했다.
어쨌거나 봤으니 또 가자.
언제고 산줄기 하나를 끝내고 돌아서는 길은 이렇게 쓸쓸하다.
고속도로 위의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내 갈길을 비춰주려 무던히도 애를 쓴다.
너무 애쓰지 마라.
어둠속에 그저 걷는맛도 나름의 운치는 있단다.
무심히 걷다보니 평목리 마을회관에 다다랐다.
이곳서 공주택시를 호출해 쌍달리의 차를 회수했다.
돌아오는길 차령터널을 통과 한다.
집에 와서 또한번 뒤지게 혼났다.
어쩌면 갈수록 더해 가냐고...........
해지는 줄도 모르고 산을 타는 사람이 어딨냐고.........
집에서 걱정하는 사람 생각도 안하냐고..........
낼 출근할 사람이 피곤해서 어쩌냐고........
실컷 잔소리를 하고나더니 그래도 맛있는건 많이 해놨네.
호박잎쌈에 강된장 , 제육볶음 , 가지나물 무친거 그리고 오징어 찌개.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마시는 막걸리 한잔의 그 감미로운 맛에 하루동안의 산행 피로가 죄다 씻겨 내려간다.
요건 발해에서 제작한 지도로 본거다.
이 지도를 봐도 십승지내의 왠만한 산줄기는 밟아보지 않았나 한다.
무성지맥을 마치면 각흘고개서 서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 인근을 밟아보려 했더니 저 연미단맥이 자꾸 섭섭한 모양이다.
'왜 나만 빼능규?' 하는듯 하다.
글쎄다.
지켜보자.
그때되서 발길 닿는대로 가보마.
무성지맥 종주를 마치며........
별다를거 뭐 있간?
그저 종주기간내내 무탈하게 안전한 산행을 지켜준 산신령님께 감사 드린다.
앞으로도 어느 산 어느 산줄기를 가든 안전하고 무탈한 산행을 빌어 본다.
무성지맥을 찾는동안 들어간 비용을 정리해 본다.
기름값 120km x 0.1 x 1,900원 = 22,800원
택시비 23,000원
버스비 9,850원
이것저것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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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0,65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