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내고향 나들이

내고향 나들이........

산살사 2008. 6. 29. 22:41

언      제?   2008년 6월 29일 일요일

누  구 랑?   나혼저

어      딜?   덕암초등학교-덕곡리-유구읍내-덕곡리

 

지난주 무리한 산행으로 인해 무릎에 이상이 오는 바람에 이번주는 산을 찾지 못했다.

무릎 상태로 보아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한 상황은 아닌거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그래도 이번주는 무리하지 않는게 좋을거 같다.

하여 오늘은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는다.

 

가는길에 들러본 내모교 덕암초등학교다.

아마 내가 44회지?

 

초등학교 동녘엔 구름속에 가린 금계산이 우뚝 솟았다.

 

초등학교 교정이다.

내가 다닐땐 저건물 앞에 한동이 더 있었는데 그건물을 허물고 저 2층건물을 다시 지었다.

때문에 운동장이 많이 넓어졌다.

 

이 학교의 특징중 하나가 저 아름드리 벗나무다.

아마도 이학교가 개교될때쯤해서 심은 모양이다.

꽃이 만발할때쯤 해선 정말 볼만했는데.........

 

저 농구대 뒷편쪽으로 산을 넘어가면 내고향 덕곡리 서낭댕이쯤이 나온다.

 

 

저 건너편 돌비석이 서있는 자리가 예전 당직실 자리다.

저 돌비석은 개교 6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모양이다.

 

이 소나문 참으로 멋있다.

저 소나무를 중심으로 애들하고 손붙잡기나 나이먹기 놀이를 많이 했었다.

어떻게 하던 놀이더라?

 

당시에 저 교가를 얼마나 많이 불렀던지 지금도 2절까지 눈감고도 다 부를수 있다.

 

여긴 덕곡리 입구서 본 법화산 모습이다.

요 앞에 마을이 추동이고........

 

여기는 덕곡리 진입로........

저 뒷편으로 걱정봉도 보인다.

 

인근서 물놀이를 온 모양인데 늘씬한 아가씨들로만 아홉명이다.

 

각흘고개 방향서 흘러오는 물길.

이 물길이 곧 유구천 상류가 되는거고 , 저뒤에 어렴풋이 보이는 산이 봉수산이다.

 

마을 안으로 조금 더 들어왔다.

우린 여길 서낭댕이라 부르는데 아마도 성황당이 발음상 그리 변한거 같다.

 

가까워진 걱정봉.

저산을 이쪽서 보면 삐쪽해 보이지만 , 도랑골서 볼땐 또 뭉뚝하다.

 

구당골 이다.

우스갯 소린데 근방에선 저 마을 사람들이 가장 부지런 하단다. 

왜냐하면 마을 자체가 동향이라 해가 가장먼저 뜨고 , 또 가장먼저 지는 마을이다.

그러니 새벽엔 가장 먼저 일어나고 , 또 밤엔 가장먼저 잠자리에 든단다.

믿거나 말거나다.......

 

효도마을 표지석도 있다.

 

 

여긴 마을회관 이고........

 

여긴 대리골 이다.

일설에는 다래넝쿨이 많아 다랫골이라 불리다가 음이변해 대리골이라 한다는데 내보긴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머그네미로 올라가 보자.

이 구간은 예전에 밤에 막차타고 혼자 내렸을땐 앞뒤보지 않고 뛰던 곳이다.

왼쪽 골짜기가 서당골인데 예전에 애장터 였다 한다.

애장터가 뭔진 알지?

 

이젠 내 고향집도 보이고 머그네미 마을도 보인다.

 

집너머 밭이다.

이맘때쯤 한창 자라야할 고추는 다 어디가고 개망초만이 온밭을 차지하고 있다.

 

도랑골 올라가는 길이다.

저길로 오르면 4가구가 더 있다.

 

저기선 개 끄실르나 왠 연기가 저리 난댜?

 

우리 집앞이다.

엄마는 은근히 이런 화초 가꾸는걸 좋아 하신다.

참 이쁘게도 키우셨다.

 

엄마가 머리 볶으러 가신다기에 모시고 유구를 나왔는데 2시간동안 뭐하고 기달리나 고민을 하다가 유구읍내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일단 유구읍사무소에 주차를 하고.........

 

읍사무소 앞뜰에 비석들이 줄지어 서있다.

주로 무슨무슨 불망비들인데 유심히 보다보니........

 

요게 뵌다.

조병식(趙秉式)~불망비.

조병식 이라.........

일단 나와 본관이 같다. 양주조가

국사시간에 방곡령을 선포했던 인물이란거 정도는 배웠고 , 또 동학교도와 독립협회를 탄압했던 인물이란거 정도는 얼핏 알고 있다.

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인것도 알고.........

근데 이게 왜 여기 서 있을꼬?

돌아와 검색해보니 한때 충청도관찰사도 역임했다는데 아마도 그때 이곳과 인연이 있었나 보다..........

 

읍사무소를 나오니 유구읍내 주도로를 접한다.

도로 바닥이 아스팔트 포장서 블록으로 바뀐거 말고 특별히 달라진건 못느끼겠다.

 

저 귀빈다방이 여태 있네......

저 건물에 예전엔 예식장이 있었는데.......

귀빈예식장.

 

대성관도 여태 있다.

참 맛있게 하던 집이었는데.........

아마도 지금이야 기계로 면을 뽑겠지?

 

 

시장통으로 들어선다.

"한국관"

메뉴판도 없고 출입구에 카드 가맹점 딱지만 잔뜩 붙혀논걸 보니 일반 음식점은 아닌듯.......

술집인게벼.

 

"왕생관"

여기도 유명했던 중국집 이었는데......

여긴 몇해전에 엄마랑 먼저 나온놈이랑 들러 짬뽕을 먹었었는데 면이나 멀국이나 역시 옛날의 그맛은 아닌듯........

 

여기가 시장통 이다.

장이 서는 날이면 사람이 바글바글 한데 오늘은 평일이라 한산할 따름이다.

유구장이 38장이니 어제가 장날 이었다.

 

세동상회네.

저집 둘째아들이 아마 내동창이지?

보환이.

 

유구터미널인데 예전의 라이벌 온양교통과 시민교통 버스가 나란히 서있네........

요즘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예전엔 유구서 온양간 노선이 황금노선이라 불릴만큼 승객이 많았었다.

특히 등하교 시간때면 학생들 때문에 버스의 문을 닫지 못하고 안내양이 버스에 매달려 가기 일쑤였을 정도다.

온양교통이 운행하던 이 황금노선에 공주 시민교통이 끼어들면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는데 때론 기사들간 주먹다짐까지 있었고 , 때문에 한때는 안내양 대신 한차에 남자 셋이서 같이 다니기도 했다.

싸움나면 쪽수가 중요하니께........

 

유구터미널 건물도 참 많이 낡었네.....

 

이왕온거 유구중학교도 가보자.

 

또와문구도 그때 그모습 그대로다.

내동창네 집이다.

정민이네....... 

 

유구도서관도 생겼네....

 

유구중학교 교정 이다.

여기서도 참 많은 스승을 접했다.

지금와 돌아보면 당시에 우스개소리 잘하고 , 외모 출중하고 , 놀기도 잘하고 , 또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던 인기 많았던 스승들은 사실 머릿속에 별로 남지 않는다.

엄했던 스승 , 매를 많이 들던 스승 , 의욕적이던 스승.

그런 스승들의 가르침이 지금엔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때론 자기 감정을 못이겨 주먹을 휘두르던 스승도 있었고 ,

학생의 인격을 무시하고 욕설을 퍼붓던 스승도 있었고 ,

또는 야구방망이나 대걸레 자루로 두들겨 패거나 물건 따위를 집어 던지던 스승도 있었다.

사실 그시대엔 그런 스승들이 꽤나 있었다.

스승의 체벌은 사랑의 매를 통했을때 교육이라 본다.

사랑없는 체벌은 폭력일 따름이다.

 

학교를 한바퀴 돌아 다시 교문을 나서는데 멀리 낮익은 산봉우리들이 보인다.

왼쪽게 태화산나팔봉이고 오른쪽게 옥녀봉 이다.

중학교 3년을 다니는 내내 저산들을 보며 하교를 했을텐데 저산이 그산인줄은 이제사 알았으니........

 

엄마가 머리를 다 볶고 다시 덕곡리에 들어왔다.

우리집 논이다.

얼마전까지 묵어서 잡풀이 뒤덮고 있더니 이렇게 깔끔해 졌다.

광해방지사업단에서 잠시 빌려 쓰고는 이렇게 합배미를 쳐놨다.

훨썩 보기 좋네......

 

도랑골 오름길에서 머그네미 마을을 내려다 본다.

 

마을앞을 내다보니 법화산이 떡하니 버티고 섰고 , 그 옆으로 어렴풋이 보이는게 내가 직접 걸어서 확인한 태화산나팔봉 이다.

 

집너머 밭이다.

엄마가 틈틈히 가꾸고 계시다.

 

가지도 심고........

 

들깨도 붜놓고........

 

손주덜 오면 줄라고 차미도 심고.......

 

오이도 심고.......

 

생전에 아버지께서 심어 놓으신 밤나무다.

 

고추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우리동네선 이 고구마를 감자라 불렀고 , 진짜 감자는 보리감자라 불렀다.

물론 예전 얘기다.

요즘은 안그런다.

근데 아직도 간혹은 그렇게 부르는 어른도 계시다.

 

자식들 주려고 이렇게 찰옥수수도 심고.....

 

강낭콩도 심고.......

 

대파도 심었다. 

 

자두나무엔 자두가 탐스럽게 열렸다.

 

여길 보니 맘이 안좋다.

이맘때면 한참 고추가 빼곡히 자라고 있을 시긴데 주인 잃은  밭엔 이렇게 개망초가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밭옆으로 심어논 밤나무는 이렇게 터널을 이루고........

 

노는땅이 아까운지 밭 한복판에 이렇게 오가피도 심어 놨네.

 

이건 내가 몇해전에 사다심은 뽀로수 나문데 멀리서 보곤 불난줄 알았다.

탐스럽기 그지 없다.

 

잠�동안 이만큼이나 땄다.

 

이건 우리밭이 아니다.

요샌 이 마가 괜찮은 모양이다. 

이 마밭이 갈수록 늘어 간다.

 

다시보니 완두콩도 심으셨네.

 

생각도 심으시고.

 

집너머서 혼내깔쪽을 내려 본다.

이리보니 평안하고 아늑해 보인다.

 

나 갖고 가라고 그새 가셔서 비듬나물을 이렇게 많이 뜯어 오셨다.

 

고추랑 , 아욱이랑 , 오이랑 , 완두콩도 따오셨다.

나 준다고......

 

이 대파도 다 싸주신다. 

엄마가 싸주신 먹거리가 트렁크 한가득 이다.

나를 향한 엄마의 사랑은 이렇게 무한 하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키 위해서라도 더욱더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내사랑하는 사람과 내두살점들과 깨쏟아가며 재미나게 사는것도 엄마한테 할수있는 커다란 효도가 아닌가 한다.